르 귄의 2대 연대기 중 하나인 헤인 시리즈의 작품.
르 귄은 장르 소설가지만 문체나 주제를 생각해보면 순문학에 오히려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팬터지나 sf에 문외한이 읽어도 무리없이 읽히는 작품이 르 귄의 작품이다. 장르문학가중에 노벨문학상(풋)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르 귄이라는 평을 오랜동안 받았단다.
헤인 시리즈는(잘은 모르지만) 우주에 84개의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가 서로 에큐멘이라는 하나의 정부로 엮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지는 이야기다.(역시 설명이 이상하다. 잘 모른다니까) 어둠의 왼손은 84번째로 발견된 행성인 행성 '겨울'에 에큐멘의 사절 '엔보이'가 와서 교류를 한다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작품을 읽다보니 이영도는 르 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릭터적인 면은 젤라즈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계관이나 기타적인 면에서는 르 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 젤라즈니가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를 창조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르 귄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가 문명적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상상한 뒤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그 역사 안에서 끄집어 낸다는 느낌이다. 이영도의 작품도 후기쪽으로 갈수록 젤라즈니에서 르 귄적인 느낌이 든다. 르 귄의 아버지가 인류학자라는데, 그런 것 답게 행성 겨울의 역사는 치밀하고, 설정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나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해를 말하고 있다. 또 이해다. 신체 조건은 다르지만 엔보이 겐리 아이와 세렘이 시류에 휩쓸리는 동안 함께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sf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보는 것 자체로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자연스레 2편만 어렵사리 구해서 본 어스시 이야기 또한 엄청나게 보고 싶어 졌고, 이 노작가께선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남겨주시길 바란다. 아흔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더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