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여자가 있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일한다. 어린 딸이 있는데 어디 맡길 데가 없어서 데리고 출근한다. 형편도 안 되고 사람도 없다. 함께 살던 여동생도 얼마 전 고향으로 돌아갔다. 홀로 계신 엄마의 병세가 위독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은 엄마를 돌보기로 하고 언니는 그들의 생계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딸, 여동생, 엄마. 세 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여자는,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또 다른 노인들을 돌본다.
여기까지 듣고 이 그림책의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게다가 여자의 딸아이가 본 독일 노인들은 낯설고 괴팍하다. 어떤 할머니는 아들이 올 때가 되었다고 끊임없이 되뇌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또 어떤 할머니는 요양원에 잠깐 놀러온 사람인양 다른 노인들과 멀찍이 앉아서 그들을 흉보기도 하고 화려했던 젊은 날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노인들을 돌보는 엄마의 노동을 어린 딸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 그림책을 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장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그림은 차분하고 섬세하며 이야기는 담담하다. 그 배경과 대화들을 따라가다 보면 괴팍함에 가려진 노인들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이 듦을 인정할 수 없는 절망감, 하루를 살더라도 요양원을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갈망, 반려자를 보낸 상실감…. 그 마음들을 돌보는 여자의 마음도 섬세하게 읽힌다. 또한 담담하게 어떤 질문이 일어난다.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달리며 점점 더 무거워지는 돌봄의 무게와 타국의 노동력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돌봄의 현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토록 현실적인 질문을, 셰리 도밍고는 비바람 속에서 핑크빛 우산아래 어깨를 맞댄 노인과 엄마와 딸의 마지막 모습으로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