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자키 준이치로의 <미친사랑(치인의 사랑)>
distracted 2017/08/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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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사랑
- 다니자키 준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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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30
- : 819
짜증나지만 재미있게 후딱 읽어버렸다. 한 5시간 걸렸을까. 다나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열쇠>를 읽은 이후 다나자키에 대한 관심이 동해서 <미친 사랑 (치인의 사랑)>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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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의 샐러리맨이 15살의 카페 여직원을 데려다 키운다. 15살의 여자애를 잘 키워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자 하지만 그 아이는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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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 수록 오히려 허영과 사치에 물들어 그의 돈을 물쓰듯 쓰고, 여러 학생들과 서양 남자와 프리섹스를 즐기며 방탕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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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런 그녀를 원망하고 타고난 창녀라며 저주하면서도, 비너스이자 여신으로 숭배하고 찬양하며 그녀에게 도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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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질투와 실망과 패배감이 커져갈수록 그녀에 대한 집착과 종속은 심해진다. 그런 그녀에게 단말마와 같은 저항을 시도하지만 이윽고 그녀 앞에서 스스로 "말"이 됨으로서 그녀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맹세한다. 주인공 조지는 더이상 나오미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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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복종한 대가는 어떻게라도 그녀 곁에 머물 수 있는 지위를 얻는 것이다. 그녀에게 아무 것도 간섭할 수 없지만 그는 그녀 곁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며 행복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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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에히리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도-마조히즘의 심리에 대해 논한 것과 같이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종속됨으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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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입에서 집에 데려온 그녀를 등에 엎고 바닥에 엎드려 힘겹게 말을 태워주는 모습은 그가 마조히스트로서 완전히 그녀에게 마비될 것을 상징하는 복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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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마조히스트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페미니즘적인 접근이 더 흥미로워 보였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상들이 무척 전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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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 그의 숭배 대상이 되는 나오미는 그에게 언제나 창녀와 여신 둘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 또한 그녀를 탐하고 그녀와 즐기는 남성들 역시 그녀의 "마력"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공유"하는 창녀로 여길 뿐이다. 언제나 그녀는 매춘부, 창녀로서 암시되며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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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는 고혹과 매혹을 내뿜는 창녀이면서도 숭배와 찬탄의 대상이 되는 여신이다. 마치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가부장제 하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여성들이 여신과 창녀 두 존재로 구분되었듯, 마조히스트 남자에게 나오미는 창녀와 여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을 구분하는 잣대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은 남성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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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비교되는 여성들로는 우아와 아름다움을 가진 기라코와 주인공 조지의 어머니 그리고 백인 귀족 여성이 등장한다. 기라코는 나오미와 비교되는 "진정한 여성"으로서 조지에게는 "갈고 닦은 귀중품"이자, "이탈리아나 프랑스 여자"이먀 "온실에 핀 꽃"이자 "대단한 명장이 만든 인형"으로 묘사된다. 즉 그녀는 "바람직한" 여성상이다. 또한 조지의 어머니는 깊은 자애로움이 묻어나는 "참된"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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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 단아하고 우아하며 처녀답고 기품있는 여성, 팜므파탈의 여신이자 "공유"되는 여성인 창녀로서의 나오미 그리고 그저 "일본인"보다 확연히 우월한 백인 여성이 드러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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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소설 속에서는 오직 남성들이 선망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만 나열될 뿐이다. 애초에 남성 마조히스트의 판타지를 그린 소설이긴 하지만 오직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여성상들만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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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에 비친 여성은 남자에 의존하여 허영과 사치를 부리고 남자를 파멸시키거나,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남자-아들을 보살피고 지원하거나 혹은 "백인 여성"이라서 도저히 "일본인"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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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등장했던 시기에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는 사회와 남성이 규정짓는 여성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폭탄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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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장 한 장 뜯어보는 맛이 있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다루는 문장은 페미니즘 수업에서 사례로 사용하면 딱 일 것 같다. 또한 20세기 초반 일본을 지배했을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과 인종에 따른 서열의식도 잘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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