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글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책을 읽으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후 그가 써낸 수많은 사회 성찰적인 글들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 사이에 인지도를 넓혀가며
많은 동조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출판사에게 항상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절감하게 하는 분야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 중에서도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에 들어선 박노자의 글은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간혹 열람하며,
되도록이면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한 또 다른 논객의 글을
사서 읽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노자가 자신의 많은 글에서 얘기하는 사회주의 또는 좌파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문득 궁금해져서
비록 오래 전에 출판한 글이지만, 유럽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박노자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주의 또는 좌파는
현실의 권위, 금권력, 물리적 제도적 힘, 관행, 불합리함 등에 끊임없이 비판과 성찰을 제기하는 태도라고 정리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되었다. 이것이야말로 100여년 전에 좌파가 탄생하면서, 사회주위 운동이 전개되면서 정의한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좌파가 정의한 자기 역할을 한 세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여 '좌파'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시각에서라면 박노자의 의견에 공감이 간다.
전쟁 세대인 부모를 둔 내가 무의식중에 레드 콤플렉스를 가져서 그런지 몰라도
몇 년 전에 읽은 멘셰비키파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과 함께
이후 어지럽고 복잡하고 민중 기만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가 겹쳐져서
내심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물론...지금도 나는 그것을 다르게 명명할 이름은 없을까 생각 중이다. 그냥 일상용어로 얘기하면 박노자는 사회의 사회구성원의 질높은 "행복"을 얘기하고 있는 것인데...."행복주의자?" 이러면 영 힘빠지려나? ^^ 워낙에 "사회주의" "인민" "노동" "노조"만 붙이면 "좌파"가 되는 줄 아는 세상이다 보니 말이다. 참, 현재 한국 사회에서 "행복"은, 쉽게 "경제적 부"와 동일시되어 보수파의 슬로건처럼 보이기 쉽긴 하겠다. 에궁....)
克己를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들, 길들어버린 그릇된 인식들의 극복'으로 서술한 대목이나 '깨침'이란 삶에 대한 의식이 지금까지와 달라지는 것이라고 서술한 대목을 보면, 학문을 하는 목적은 결국 '자기 성찰에 있다'고 생각해 왔던 - 그런 점에서 공부해서 남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말이다 (물론 최근의 어느 책에서는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명제로 학문하는 행위의 '소통'의 가능성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 내 생각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아서, 기존의 그런 사소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담 반 진담 반이지만...워낙에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과 엘리트 기득권층이 보여주는 삶의 자세가 개인영달적이고 이기적이다 보니, 박노자처럼 이방인, 일탈자, 주변인과 같이 사회의 주류나 중심에서 배제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 타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 학문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은 너무나 요원해 보인다. 차라리 현실적이고 솔직해지자. 나부터 반성하자고. 克己하고 깨쳐야 전과 변함없는 주위를 둘러봐도 달리 보이지 않겠는가? 소수자를 위한다...노동자를 위한다...서민층을 위한다....글쎄....자가 분열하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부터 한번 살펴보는게 어떨까?)
"비서구 지역의 비민주성을 그토록 비웃는 서구 사람에게는 민주주의가 신념이라기 보다는 단지 사회의 관습일 뿐이다. 안 지켜도 되고 또 안 지킬 수 있는 지역에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도덕을 너무 쉽게 용도 폐기한다." 라는 대목에서, "민주"와 "자유"는 그야말로 보편 가치이지, '중국적 민주' '서구적 민주' '한국적 민주'라는 말은....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물론 각 문화권과 국가마다 그러한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것을 둘러싼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는 천차만별이지만, '서구적 자유'와 '동양적 자유'라는 이런 말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은 인문학과 달리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그때그때 빨리 분석하고 파악해야 하는
특성이 있는데, 단순한 사회비판에 그치지 않고
깊이있는 역사적 문화사적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이렇게 논의를 끌어내는 것을 보면,
국가,민족,인종,문화권적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도
이질적인 (그야말로) "문화 교류" "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노자의 시각과 글 그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