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pink1208님의 서재

불문학을 전공하신 분이 소개해 주셔서 우연히 알게된 유르스나르의 작품들.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고, 난 이 분이 아니었다면,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단 1편도 읽지 못한채 인생을 마감할 뻔 했을 것이다.)

<하드리아누스 회상록>이 절정에 달한 작품이라고 해서 앞 부분만 잠깐 보다가 덮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고백체의 문투에,

문장 하나하나에 인간의 진실(햇빛이나 달빛처럼, 신분 나이 성별 재정적 상황에 상관없이 누구나 나눌 수 있는 것)을 담아, 로마의 실존 황제 하드리아누스에게 작가적 통찰을 쏟아붓는 작가의 그 굉장함(! 아직 유르스나르에 대해 잘 모르므로, 위대하다는 말까진, 감히 못쓸 것 같아서)에 눌려서, '이렇게 짬짬히 읽을 책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일단 접어둔 것이었다.

그래서 동학에게 유르스나르 얘기를 했더니,

도서관에서 <알렉시> 와 <세 사람>을 제본(항간에는 도둑질이라고 난리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보다시피 이미 절판되었고, 비좁은 서재에 반드시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을 일게 하는 작품이라 부득이하게 한 일이었다)해 와서 나에게 주었다.

<하드리아누스 회상록>의 1/3분량이라 일단 시도했다.(밤에 자기 전에 1-2시간 시간내서 읽었다.)

역시!

유르스나르...이 여작가, 심상치 않은 작가다.

난 국문과 출신도 아니고,

인문학을 한답시고 남들에게는 그렇게 소속을 밝히지만,

여러 나라의 문학작품을 다양하게 섭렵한 그런 교양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이렇게 글을 써내는 여작가는, 난생 처음 본다!

 

주인공 알렉시는 남성 동성애자이다.

이 작품은 이 알렉시의 목소리에 의해 전개되는 전기체 소설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은 물론이며,

동성,이성애자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에 대한 성찰을 고백한 그런 소설이다.

기본 줄거리야 다른 분의 리뷰에도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이고,

내가 신선하게 여겼던 것, 책을 덮고서도 잊혀지지 않았던 점을 얘기하자면,

본문에는 '동성애'라든지 화자 자신의 '취향'이라든지 하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렉시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음악가인데,

그가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이성애자 부인 모니끄를 맞이하여, 아이까지 낳고 2년을 살았지만,

더 이상 부인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편지를 통해 이별을 고하는 그런 남자이다.

 

남성 동성애자가 이성애자 부인에게 하는 고백의 말,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모니끄는 유럽 상류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답고, 조신하고, 따뜻하고, 사려깊고, 교양있는 가문 출신의 여자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조차도 알렉시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그 큰 사랑을 요구하기를 포기했었소. 틀림없이 그 사랑을, 내가 당신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여인도 내게 일으키지 못할 것이오."

"나는 당신에게 애착했던 것이오. 나는 애착했소. 불행히도 적절한 말이라곤 이 말밖에 없소."

 

어떻게 여성 작가가 이런 남성 동성애자의 마음을, 더군다나 고백체로 써낼 수가 있었을까?

동성애자도 인간이야! 라고 외치는 어떤 영화나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난 130쪽 분량의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말이다.

"동성애자도 인간이야."라는 것은 굳이 말이나 표어를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

<알렉시> 1편이면.

 

최근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같은 영화로 여성 관객을 사로잡았다고 떠들던데,

글쎄...? <앤티크>같은 영화로 단순히 남성 동성애자를,

잘생긴 남자들, (CF카피대로)완벽한 남자들로만 생각하는 여성분들이라면, 

유르스나르의 <알렉시>, <세 사람>을 연타로 읽어보시길.

진지하게, 그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보시길.

그리고 우정이라면 모를까, 행여나 남성 동성애자를 (알면서도) 사랑하는 불상사는

스스로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길!(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임. 그 이유는 <세 사람>의 리뷰에서...)

 

 *부언

언젠가, 학교에서 발행되는 소책자에서 성적 소수자 문제에 관한 글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내려오는 그런 종가집의 종손이었는데,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유교적 틀에서는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도 반드시 결혼은 해야 한다.(내가 중학교 때 함수를 배우면서, x와 y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옛날 사대부가의 여인들은, 시집을 안 갈 수도 없었고, 두 번 갈 수도 없었다고. 그것이 마치 x와 y의 함수 관계 같다고.) 그것은 뼈대있는 사대부 가문의 남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자손을 낳아 대를 잇고, 조상을 모시는 것이 법도이던 시절이었기에, 유럽의 귀족 출신에는 역사적으로도 독신자가 많았지만, 글쎄, 난 아직 사대부 출신으로서 독신자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출가를 제외하고.)

그래서...궁금했다. 그 남학생은 어떻게 할까? <세 사람>에서의 에릭과 같은 마음일텐데, 종손으로서 동성애자라고...용기있게 부모님께 가문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부디 그가 <알렉시>처럼 살게 되지 않길 바라며.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