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는 동안 내세운 ‘근대화’라는 명분은 결국 한반도와 그 주민들의 이익이 아니라, 일본 본국의 경제적 이익 증진에 맞춰진 것이었다. 『반일 종족주의』는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기존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우파 및 주류 경제학적 시각에서 논리적 반박을 시도한다.
솔직히 이 책을 아주 꼼꼼히 읽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전하는 메시지와 논거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특히 ‘반일 종족주의’ 등 뉴라이트발 논쟁을 원문과 자료를 근거로 차분히 반박하는 부분은 신선했다. 흔히 좌파 진영이나 비주류 학계에서 많이 다뤄지는 식민지 비판 논리가 아닌, 우파 경제학 내부에서도 이런 비판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율적 거래’가 아닌 ‘타율 거래’로서의 식민지 경제

늘어나는 쌀 생산량에 비해 줄어드는 한인의 쌀 소비량
책은 당시 한반도 경제를 자본주의가 아닌 군국주의 일본의 간섭주의와 사회주의가 혼합된 독특한 ‘수탈체제’로 정의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자율적 거래’라고 해석하는 많은 거래와 경제활동은 사실 ‘일본의 강제적 개입’과 ‘규제’로 얼룩진 ‘타율 거래’였다. 예를 들어, 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생산량을 늘린 것이 실제로는 일본에 쌀을 대량 수출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로 인한 가격 하락 피해는 오롯이 한인들이 떠안았다. 이 외에도 강제저축, 노동 착취를 통한 노동 시장 왜곡 등 일본이 설계한 다양한 제도는 한반도의 경제는 일본 본토 이익에 종속된 구조였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전시 경제와 ‘자발적 동원’의 허구성

당대 지식인들의 징병독려 선전 - 윤치호, 매일신보 (1943.11.17)
1930년대 전시체제로 접어들면서 강제징용, 강제저축 등 사실상 강제동원이 만연했다는 점도 명확하다. 저자는 당시의 ‘자발적 동원’ 주장에 대해, 일제 선전과 협박, 압력으로 사실상 강요된 선택임을 지적하며 이 또한 신화임을 밝힌다. 내 생각에도 이 부분은 과거에 쉽게 지나쳤던 ‘겉보기’와 ‘실상’의 차이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진정한 근대화’란 무엇인가?

근대화는 문물 뿐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이념
이 책에서 가장 생각할 거리를 준 부분은 ‘근대화’의 정의다. 단순히 제도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상적 가치까지 구현되어야 진정한 근대화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이 ‘이상적 근대화’ 기준이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의문도 든다. 현대 사회조차도 자유와 평등이 완벽히 실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면 ‘근대화’라는 개념을 너무 높게 잡고 이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잣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런 점이 되려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본의 이익을 위하여

이 책을 읽으며 끝까지 남은 한 문장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은 결국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무엇을 목표로 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이 책은 그 답으로 “한반도와 조선인들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일본의 경제적 이익 증진을 위한 정책이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기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많은 허점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편, 저자의 비판 논리는 매우 논리적이고 근거가 충실하지만, ‘일제강점기의 경제가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는 주장에는 조금 아쉬움도 남는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 사회 또한 ‘완전한 자율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규제와 정책 속에 운영되고 있고, 곡물 가격 같은 필수재에 대한 정부 개입은 현재도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잡는 것은 오히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옹호로 읽힐 수 있고, 마치 현대 자본주의를 (일제강점기와 반대의) 이상향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마찬가지로 ‘근대화’의 기준을 다소 이상적으로 설정한 점 역시 다소 현실과 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자유와 평등은 과정이고, 완성된 상태가 아니며, 여러 시대가 거쳐가는 ‘근대화’의 과정이 아닐까? 이런 관점만을 끝까지 유지할 경우 결국 "일제강점기도 근대화의 과정이다" 같은 주장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반일 종족주의』는 기존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우파적 시각에서 신랄하게 반박한 독특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바로 ‘일본 식민지 정책의 본질적 목표와 의도’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점이야말로 역사 인식과 경제사 연구에서 가장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