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동점의 시대, 격동의 시기에 한중일 모두가 살아남길 바랐으나 실제로 서구화에 성공하고 열강의 반열에 오른 것은 일본 뿐이었다.
어떻게 일본은 가능했던 것이 중국과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다. 흔히 교과서적으로 '중국은 제도나 철학은 전통을 따르며 서구의 무기와 기계만을 도입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고, 일본은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부분에서 서구화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라고 설명하곤 한다.
정신과 물질이 두부 자르듯 구분되는 것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다보면 중국이나 일본이나 서구화를 시도했던 방법이나 양상에 명확한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태평천국운동이나 아편 등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이 있었다고 하지만 일본도 양이지사(?)들의 테러행위와 번(다이묘)들간의 극심한 경쟁, 이분화된 지배구조(조정-막부) 등으로 인한 혼란이 빈번했다. 게다가 다이묘들간의 경쟁과 조정-막부간의 알력다툼은 실제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은 도데체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여기에 대해서 힌트를 <본격 한중일 세계사 05 열도의 게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서세동점을 시작으로 한중일이 이 시대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다루고 있다. 특히 05 열도의 게임편은 1860년 견미사절단에서 시작하여 1864년 조슈번의 교토의 어소 공격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하고도 쉽게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서구세력과의 접촉 초기부터 지방의 번들의 자체적인 서구무기 도입, 막부의 개화정책, 일본 자체의 경제력 등을 보며 일본이 다른 나라와 달리 어떻게 독립을 유지하고, 이후 열강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추측하게 해준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정과 막부의 갈등과 고메이의 권력 투쟁 속에서도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전면적인 내전을 피하려는 것과 외세의 힘을 빌지 않는 것이었다. 고메이가 꽤나 개화를 반대하고 양이를 주장하며 복고적인 철학을 내세웠지만, 결론적으로 당시 위정자들이 갖고 있던 이러한 자세가 일본이 서구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한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20여년 뒤 조선에서 있을 권력투쟁과 외세의 개입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농민반란 조차도 자체적으로 막지 못했던 조선이나 청에게 이런 자세는 사치였으려나.
시리즈를 전부 읽어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이 책 한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당대 일본이 조선과는 어떤 점이 달랐고, 또 청과는 어떤 점이 달랐는지 생각해보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본이 생각보다 조선/청과 다르지 않았고, 또 생각보다 조선/청과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자가 인터넷과 서브컬쳐에 심취하여 도를 넘은 드립이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5권)에서는 크게 기억나지 않으나, 이 시리즈가 원래 연재되던 저스툰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보면 다소 민망하거나 불편할 수 있을 연출이나 드립도 존재한다. 이런 점이 개선되면 좋겠지만 저자의 특성상 어지간해선 쉽게 변하진 않을 것 같다.
이런 점이 개선된다면 이 책은 역사를 쉽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 시리즈 전체를 읽고 싶다. 아직 조선이 나오진 않았는데 조선 편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