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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밧드의 서재

일본어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수님께서 툭 던지신 화제가 있었다. "왜 아베는 여전히 집권하고 있는가?"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일본인 학생에게 질문을 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서로 굉장히 친밀한 사이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으니 그 일본인 친구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시라. 어찌되었든 기억이 나는 건 그 일본인 친구의 대답이다. 


"아베가 잘못한 건 맞는데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들 해요."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의 핵심내용 중 하나가 이 대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일본의 정치환경과 아베의 장기집권,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 등을 다루며 아베가 말하는 '아름다운 일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아베는 학원스캔들, 문서조작 파문 등 그간의 다양한 정치위기를 맞았지만 2017년 중의원 해산 선거 등을 승리로 이끌며, 2019년 현재까지 7년간(과거 임기까지 포함하면 8년) 집권하고 있다. 앞으로도 쭉 집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주된 이유는 아베 개인의 역량과 운, 야당의 궤멸, 일본의 우경화이다. 자민당의 역량 및 고이즈미가 마련한 힘있는 총리 제도의 수혜를 받고 있으며 정치적 위기때마다 이를 무시하거나 화제를 돌리는 등의 방식으로 극복해왔다. 또한 도호쿠 대지진으로 기억되는 일본 민주당의 무능과 그로인한 실망감, 일본 전반에 퍼진 우경화 분위기와 정치적 무관심(냉소주의) 등이 아베의 장기집권과 우익정권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유능한 아베의 측근들, 수상관저 기능 강화 및 관료집단 장악, 인사권 장악, 언론의 무기력 등을 꼽았다.


일본에 살면서 직접 경험한 사례들과 일본 정치인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풀이하는 것은 저자가 책을 집필할 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게해준 대목이었다. 자민당의 운영 방식이나 일본의 선거제도 등의 정치환경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 또한 자세하여 신뢰성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너무 세부적인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을 잃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이미 아베가 실각한다고 해서 일본의 우경화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아베라는 정치인보다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가령 지정학적 위치, 일본 사회나 정치제도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의 분석이길 바랐는데 아베나 정치인같은 개별 요소들에 집중한 점이 아쉬웠다. 책의 많은 내용이 그저 단편적 사실의 나열이 되어 버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 집중한 탓일까? 한국인이 일본에서 겪는 차별이나 혐한사건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아쉬웠다. 저자는 고등교육을 받은 남성이고 현재 일본에서 교수로 학부장을 맡고 있다. 사실 이런 지위를 가진 사람이 눈에 띠는 차별을 경험하긴 어려울 것이다. 만약 저자가 저소득층의 한국인 여성이라면? 일본인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 주부라면? 혐한범죄를 당하거나 모욕을 듣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가령 관공서에서 한국인에게는 반말을 한다거나 지하철에서 모욕을 당한다거나 말이다. 그런 차별과 범죄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쯤으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아쉬울 것이다. 또한 재일 조선인들이 겪는 법적인 차별이나 차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에도 너무 소극적인 서술이었던 점과 차별적 법제도가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한 점은 저자의 신분적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몇몇 아쉬운 대목에도 불과하고 저자가 보여준 일본 정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나름대로의 의견은 현대 일본과 앞으로의 일본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 우익의 본산인 일본회의나 여러 정치인에 대한 프로필, 혐한을 조장하는 언론 등 일본이 여전히 우경화되고 있고 그 우경화의 1차 목표에 한반도가 있음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 '집단적 자위권'이 의미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주변의 동맹국이라고 하면 남한밖에 없지 않은가? 진보/보수할 것없이 국뽕에 환멸을 느끼며 일본에 대한 호감을 높여가는 우리와 달리, 애국심에 ABC등급을 매겨 평가하는 등 국뽕을 향해 달려가며 한반도(남북한)과 중국 등에 대한 혐오를 키워가는 일본을 보자면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는 일본의 재무장과 '정상국가'로의 변화가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어찌보면 국가가 자신의 군대를 갖고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과 2차세계대전에서조차도 끊어지지 않은 정체성을 보면 주변국,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루빨리 일본의 우경화가 멈추길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일본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을 아는 것은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현재 일본과 일본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서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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