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소년의 몸으로 낸티킷 포경선에 올라탔던
그 남자 , 40년이 흘러 강철처럼 파란 아름다운 날 아침 뒷갑판에서 청명한 태평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40년 동안 소금에 절인 음식만 먹으며 살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마저 양분이 말라버렸다는 이야길
꺼낸다.
잿빛머리가 되고 등이 굽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겨진 자신을 한탄한다.
목표만을 향해 가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40년 포경선 생활로 부유함을 얻었고 50나이에 젊은 처녀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얻었지만 그는 지난 40년중 육지에서 생활은 3년밖에 안 됐다.
37년이란 시간과 청춘을 오직 고래잡이로 망망대해 그 외롭고 굽이치는 고독의 파도 속에 자신을 던졌다.
배우고 익힌것이 오직 그것이었기에 그에게는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평생을 쫒고 살아온 그것에게 다리 한 쪽을 잃고나서
에이해브는 자신의 지난 40년이 모두 부정 당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광기어린 편집증 , 주술에 걸린 미치광이 같은 표현으로
그를 이해하기 보다는 , 삶의 모든 것이 모비 딕이란 대상으로 인해 부정당하고 직업적 자존심까지 짓밟혀 그로 하여금
마지막 삶의 에너지를 거기에 쏟게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자신의 복수를 위하여 30명이 넘는 선원들 목숨마저 저당 잡히게 한 것은 이기적인 행위 였지만
그들 모두 바다의전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철인들이었기에 미친 선장 에이해브의 제안을 두려웠지만 수긍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을 때 이슈메일의 눈과 감각으로 책을 읽을 것인가 , 에이해브 선장실에 동거하며 선장의 감정선을 따라 읽을 것인가 아니면 스타벅이나 스터브 같은 일등,이등 항해사의 혼란스러운 정신에 동의하며 책을 넘길 것인지 그 결정에 따라 수 많은 생각들이 다르게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
이슈메일의 시점으로 피쿼드호에 초보 포경꾼으로 탑승한 무명의 선원으로 독자가 읽는다면
생소하고 전문화된 포경선과 고래들에대한 지식을 배우며 책의 종반 부 모비 딕과 3번의 전투 때 손에 땀이 흥건히 날 만큼 박진감 넘치는 전투 경험을 할 것이고 ,
작가 허먼멜빌의 시점으로 책의 용골을 가로질러 관통하여 드 높은 돛대 꼭대기에서 책의 중심 내용보단 멜빌의 치명적인 은유 , 비유 , 암시 , 묘사 글쟁이로서 얼마나 뛰어 난 표현을 하고 있는지 잔잔한 물결처럼 조용히 책속에 스며들어 살펴본다면 ˝ 모비 딕 ˝ 속 아름답고 거침 없는
문장, 문체의 맛도 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이 모비 딕을 열번 씩이고 다시 금 읽어
보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같은 산을 올라도 정상을 향하는 길이 무수히 많고 등산하는 자의 지적체력에 따라 봉우리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채롭고 숨겨진
명소까지 발견 할 수 있는 산이 ˝ 모비 딕 ˝ 이다.
조만간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다음에 읽을 땐 배화교도 패달라의 암흑적인 정서로 읽어볼까?
패달라의 시점으로 읽다가 종반 부 모비 딕 몸에 밧줄로 감겨 심연의 물길 속으로 쳐 박혔다가
안구 돌출 후 물 위로 떠 오르는 그 섬뜩한 공포 주술적인 암시 매력적인 시선이 될 수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