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진실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하거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사랑을 그려내지 않는다. 운명 같은 사랑도 없고, 선정적인 소재에 기대지도 않는다. 모든 주인공은 실제 세상의 미국 어디선가 막 튀어나온 듯이 생생하고 그런 생생한 인물들이 이끌어 나가는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동안 읽어본 러브 스토리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의 작가 칼 인옘마는 과학자인데, 실제 유명한 논문도 많이 쓴 로봇 공학의 매우 이름난 과학자라고 한다. 그는 연구 틈틈이 소설을 썼는데, 과학도가 쓴 소설답게 소재나 등장인물은 모두 연구원에 소속된 사람이나 세상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보려는 인물들이다. 과학이나 이론이 소설의 직접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주된 이야기의 동인은 매사를 과학적으로 보려고 하지만 세상을 사는데는 서툰 인물들이고 그들의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그 단편 하나하나가 다른 정서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흡사 여러 명의 작가가 쓴 게 아닐까라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이점 역시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의 표제작인 [인간의 낭만적 교감의 본성에 대하여]는 슬래니란 마을의 공과대학에 있는 한 비전없는 연구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학장의 딸 알렉산드리아를 사랑하지만 자유분방한 알렉산드리아는 고리타분한 주인공 조지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장은 어린 학생과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전처를 스토킹하고 있다. 이런 느슨한 인물간의 관계가 느슨하게 진행된다. 그와 함게 이 마을, 슬래니에 처음 금을 캐러 온 한 개척자의 일기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묘사되는데, 이 개척자의 일기는 이 소설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잘 나타내 준다. 결국 일기의 말미에서 묘사된 대로 개척자의 희망은 무참히 꺾이고, 덩달아 조지프와 그 주위의 인물들이 가졌던 “관계의 회복”도 무심하게 꺾어버린다. 일면 재미없어 보이는 스토리이지만 나른한 스토리 전개와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소설에 묘사되는 삭막한 풍경은 꽤나 잘 어울려 묘한 울림을 준다.
표제작이 지루하다면 이 후에 스토리가 재미있는 소설들도 많다.
[골상학자의 꿈]은 골상학을 연구하는 19세기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사람들의 골상(두개골의 형태)으로 그 사람의 기질이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그는 가장 아름다운 골상을 지닌 여자를 찾아서 방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대머리 여자가 나타나서 나서 그의 골상 모형을 훔쳐가버린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머리 여자의 머리에 붓으로 눈금를 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묘한 페티시즘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일반적 로맨스 소설의 감흥을 준다. 하지만 소재나 이야기 전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이외에도 인간의 소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복부가 드러난 사람에게 음식을 먹이는 실험을 하는 괴짜 과학자, 한 여류 삼림학자의 사랑 이야기, 19세기 인디언 감독관의 이야기 등 작가는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인물, 다양한 사건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혹시라도 문장을 꼼꼼이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과학적으로 잘 짜여지고 우아한 문체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올해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올해 베스트 5에 뽑아도 아깝지 않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