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 작가님의 신작 "주름 때문이야"는 자아가 성장해 옷이나 신발에 까다로워지고 자신의 단점도 슬슬 보기 시작한 어린이가 읽어도 좋지만 오히려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을 위한 동화같기도 했다.
자신의 장점은 전혀 보지 못한 채 점점 단점에만 골몰하게 되는 주인공 "멋진" 씨의 모습이 어찌나 나와 오버랩되던지 웃다가 짠하다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으니!
표지만 보고 "멋진"씨가 사람이 아닌 불독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다.
원래 멋진 씨는 산책을 좋아하고 동네 주민들과 터놓고 지내는 그야말로 멋진 아저씨다.
그런 그가 단골 오믈렛 가게 "오무오무"에서 두부 오믈렛을 먹으며 신문을 읽다가 눈이 나빠진 걸 알게 되고 안경을 맞추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그의 얼굴 주름이 안경을 끼자 지나치게 잘 보이게 된 것!
충격을 받은 멋진 씨. 그렇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갑자기 확 늙어보일 때가 있다. 기미나 검버섯, 주름이 늘어나보이기도 하고, 남들이 볼 때는 그닥 눈에 띄지 않는데 내 눈에는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그림동화를 읽을 때는 주인공의 얼굴에 유의해서 읽으면 더 재밌다. 처음에 멋진 씨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치명적 단점을 인식한 후에는 "불독"이 된다. 그 후 일상을 회복한 후에는 다시 "사람" 얼굴이 된다.
멋진 씨는 불독처럼 늘어지고 주름진 자신의 얼굴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창피해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휭하니 집으로 달려간다. 토끼 씨가 "멋진 씨, 얼굴에..."라고 말을 걸자 다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주름을 지적하는 거라고 생각해 정신없이 도망친다.
이 모습이 책 띠지에 응용되어서 더 재밌다. 작가님도 위트있지만 출판사 "다그램책"의 센스도 좋았다.
아..!! 토끼 씨는 멋진 씨의 안경이 잘 어울린다는 소릴 하려고 한 건데.. 이리 안타까울 때가!
이제 멋진 씨는 주름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주름을 가리기 위해 도서관에서 각종 주름 없애는 책도 찾아읽고 폭풍 피부관리에 돌입한다. 과연 모든 건 주름 때문이고 주름만 없으면 행복해질까?
그 와중에 나는 멋진 씨의 반려묘가 너무 귀여워서 정신을 못 차렸다. 온갖 걱정에 팩을 한 채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멋진 씨의 가랑이 사이에는 그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두 팔을 꼬고 잘만 자고 있었으니... (애묘인들이여, 이 책을 눈여겨 보시오)
이 동화책은 모든 캐릭터들이 다 사랑스럽다. 자신의 흘러내리는 귀를 고무줄로 질끈 묶고 씩씩하게 사는 토끼 씨도 귀엽고 단골 식당의 대머리 사장님의 이름은 듬성 씨다. 뭐가 듬성한 지 독자들은 말 안 해도 알 것.
하지만 듬성 씨는 자신이 민머리인 것에 괘념치 않는다. 이 분은 씬스틸러 같은 존재인데 나중에 멋진 씨가 버린 수염을 주워서 자신의 부분 가발로 잘 쓰게 된다.
이제 멋진 씨는 이웃들이 하는 얘기를 도통 끝까지 들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만 하려고 입을 쩍하면 자기 주름 얘기겠거니 혼자 오해해서 도망가기 바쁘다.
그 날 밤, 멋진 씨는 그의 사랑스러운 반려묘를 안고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고민이 있는 사람은 불면증에 빠지곤 하지.
새벽에만 문을 여는 은밀한 가게에서 콧수염을 사서 얼굴을 주름을 가리기로 한 멋진 씨...
아..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이건 주름이 있는 사람의 고민이 아니라 마치 탈모인의 고민처럼 와닿았다. 기다란 콧수염 때문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있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가 있나!
더운데 털로 얼굴을 다 덮으니 삼복더위에 또 얼마나 덥고!
멋진 씨의 사서 고생은 점입가경인데 그 때 구원자가 나타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법을 알려준다. 왕하고 크게 베어먹으면 된다는 그 쉬운 한 마디!
그렇다. 얼굴의 주름 따위에 신경 쓰지 말고 입을 크게 벌려서 왕하고 베어먹으면 더위 따위 도망가는 것이다!
작가는 다정하게 우리에게 일상을 즐기는 법,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알려준다. 단점에 신경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멋진 씨가 토끼의 흘러내리는 귀에 신경쓰지 않듯이, 듬성 사장님의 머리카락만 보고 있지 않듯이 남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멋진 씨는 자신의 주름에 신경쓰지 않는다. 주름이 많아도 나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것. 바람도 즐기고 재미있는 것도 보기로 마음을 먹자 잠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
적당한 자신감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멋진 씨는 이제 원래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집중하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구권에 비해 얼마나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는가 알면 정말 놀라게 된다. 멋진 씨의 우당탕당 주름 소동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영화의 쿠키처럼 면지에 그려진 듬성 사장님 씬도 너무 귀엽다.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매우 깜찍하고 상점명이나 주인공들 이름, 대사 하나하나에 굉장히 공을 들여서 한글을 읽는 재미도 무척 좋은 책이다.
내용도 더할 나위없이 건강해서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 더 즐거운 그림동화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으나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