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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사이에 읽은 책은 안전가옥에서 신작으로 출간된 장르소설 "푸르게 빛나는"이다. "푸르게 빛나는"은 김혜영 작가의 단편집으로 "열린 문", "우물", "푸르게 빛나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묘하고, 기괴한데 도저히 다음 장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그런 공포물이다.
대단히 무섭다기보다 웃기기도 하고 너무나 매력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었고 다 읽고나니 나의 최애는 <우물>이 되었다. 반전까지 놀라운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신기한 장르는 뭐란 말인가? 궁금해서 단편집을 다 읽은 후 출판사 관계자의 말(안전가옥은 프로듀서란 개념을 씀)을 읽어보니 코즈믹 호러라고 나와있더군.
작가님께서 보여주신 상상력은 단순히 호러(Horror)라고 분류되기보단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라고 불릴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코즈믹 호러는 흔히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존재로 인한 공포, 인간이 지닌 어떠한 가치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절망적인 공포 정도로 정리되곤 합니다.
프로듀서의 말 중에서
괴물을 사랑하는 작가 김혜영. 매체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영상과 글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고 띠지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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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단편영화로 만들어지길 기원하며 나는 세 가지 단편소설 중 <우물>을 중심으로 리뷰를 써볼까 한다.
엄청나게 지독한 체취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주영"이 주인공이고 비슷한 처지의 극심한 축농증 환자인 친구 효민이를 만나러 카페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불행이 닮은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비염약을 먹어도 막을 수 없는 기침을 하고 거의 냄새를 못 맡는 효민이와 액취증이 심한 수술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만 주영이.
하지만 처지가 같아 친구가 된 두 사람의 우정은 처지가 달라져도 계속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효민이 비염 수술을 받은 후 처음으로 주영을 만났는데 우웩하고 토해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토해서 미안해"라는 마지막 문자.
주영은 효민의 비염 수술이 성공해서 이제 자신의 지독한 땀냄새를 맡아버린 건 아닌지 민망하고 절망스러워 자리를 피해 도망가버린다. 하지만 친구가 구역질한 이유에도 반전이 있다!!
그 후 다시 혼자가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는데 병원 앞에서 어떤 비쩍마른 기묘한 여자를 만나며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그녀는 "냄새 안 나고 싶어요?"라는 말로 주영을 자극하고 그녀의 열렬한 소망에 대답이라도 하듯 마치 석유처럼 역겨운 검은 물을 약이라고 건내준다. 그 물은 어떤 신비로운 우물에서 뽑아오는 건데 주영과 같은 불치병이 낫는 효력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멘트.
"내가 먹는 게 내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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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의 말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나중에 엄청난 반전이 되어 뒤통수를 후려친다!
어쨌든 역겨움을 참고 여인이 주는 검은물을 다 들이킨 주영은 더 이상 땀도 나지 않고 몸에서 나던 악취가 다 사라져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게 된다.
정상이 되는 듯 싶어 기쁜 것도 찰나, 검은 물 효과는 겨우 두 세달 밖에 가지 않고 계속 몸에서 악취가 나지 않으려면 정기적으로 물을 마셔줘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때부터 여자와 주영은 이상한 동맹 관계가 된다. 검은물이 필요한 두 사람, 물을 구하려면 어떤 특정한 우물에서 채취해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 역부족이라 주영이 따라 나선다.
하지만 여자의 숨겨진 의도를 주영은 아직 몰랐고, 여자가 검은물에 탄 수면제에 취해 쓰러진 사이, 주영은 머리를 가격당하고 피를 흘린채 구덩이에 묻힌다!!
도대체 여자는 왜 주영이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그 비쩍 마른 여자의 목적은 무엇인지, 왜 주영을 구덩이에 묻어버렸는지, 우물의 정체와 검은물은 무엇인지? 내가 먹은 게 내가 된다는 소리는 무슨 뜻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며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p.84.
"마셔봐. 나는 이걸로 냄새에서 벗어났어. 같은 원리로 네 후각이 돌아올 거야."
"잇취- 너까지 약 파니? 신천지 들어갔어?"
"진짜야. 내가 증거야. 이거 정말 힘들게 얻었어."
상황은 절망적인데 곧 여자와 주영의 처지가 바뀌고 인간의 욕심이 멀쩡한 사람을 어떻게 비정상적으로 이끄는지 상황의 비극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냄새 때문에 친구 하나 없던 주영이 하나 뿐인 친구와 멀어지면 어쩌나 고민할 때, 가족과 다시 만났을 때, 주영은 남들은 다 누리는 그 평범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여인처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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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 다 흡입력이 굉장하지만 파란 벌레가 붕붕 날아다니며 신도시에 영끌해 겨우 입주한 신혼부부를 파멸로 이끄는 "푸르게 빛나는"보다 "우물" 쪽이 코믹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불치병 환자인 주인공에게 검은물을 건내는 여자가 사기꾼이나 사이비인 줄 알았지만 진실은 생각보다 더 멀리 있었고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공포물 무서워서 잘 못 읽는데 이건 밤에 읽어도 재밌다. 코즈믹 호러가 아니라 코믹 호러같은 부분이 있다!! 취향저격 장르물로서 완전 추천한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