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서있는 책 "여름의 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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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있는 피에르 본콤팽의 1984년 그림 femme foetale, "태아처럼 웅크린 여인"이 그냥 딱 <여름의 피부>라는 책 제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것이라는 느낌이라 여름 끝자락에 읽기 좋았다.
비오는 여름밤에 아무 생각없이 아름다운 푸른 그림과 함께 넘겨보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자주 비가 내리고 흐린 날에는 유독 이 눅눅함과 잘 어울렸다.
저자 이현아 님은 잡지사 에디터로 일한 분인데 이 책은 작가로서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해외의 유명 그림에 자기만의 해석을 더한 미술 서적인가하고 읽었는데 큰 틀에서는 에세이지만 좀 더 범위를 좁혀보면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풀어주는 예술서이기도 했다.
저자 자신의 글과 함께 미술 작가들의 숨은 일화나 작품 해설, 역사적인 사실 등도 써있어서 좀 더 풍성한 지적 재미를 준다.
그러고보니 띠지에 적혀있는 한 줄 카피가 이 책에 대해 좀 더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내는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
그림을 보고 글을 쓴 그림일기를 만들다보니 저자가 끌린 그림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푸른 기운을 가진 그림이었다고 한다.
<여름의 피부>는 저자의 그림일기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총 4장으로 이뤄져있다.
1장 유년: 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람, 2장 여름: 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 3장 우울: 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 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 4장 고독: 비밀과 은둔과 침잠의 색
다 읽고 이 책에 소재로 쓰인 그림만 쭉 모아서 훌렁훌렁 넘겨본 적이 있다.
정말로 꼭 푸른색이 많이 쓰이지 않았더라도 여름 느낌이 났고 녹색이나 갈색, 라벤더 색상이 주를 이뤄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작가가 각각 다른 모든 그림에는 여름과 푸른 기운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개된 작가와 작품수가 많았지만 유독 내 눈을 끈 것은 바로 발튀스(Balthus)의 불편하고도 기묘한 그림이었다.
1936~1937년작 <산>, <여름철> 모두 어둑한 산자락에 웬 여자아이가 누워서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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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과 포즈, 지팡이까지 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일부 비평가들이 병적이라고 비난했다는데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평가들이 뭐라 하건 그림 속 여자의 표정과 배경, 포즈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문제작인 <기타 레슨>도 그 의미를 떠나 그냥 봐도 이상하지만 다른 그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발튀스의 아버지는 젊은 미술사학자이자 무대 디자이너였고 그의 어머니(발라딘)는 화가였으니 아들이 유명 작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 발튀스의 어머니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 연인으로 지냈으며 그 유명한 릴케가 발튀스 13살 때에 <미쭈: 발튀스의 40가지 이미지>를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미쭈는 발튀스가 키운 고양이 이름인데 이 책의 작가 이현아 님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도 미쭈라고 한다. 남산 아래서 남편과 두 고양이 말테, 미쭈와 살고 있다고 책 맨앞 날개에 써있다. 나는 이런 공통점을 찾는 게 즐거웠다.
어린 발튀스는 애지중지하던 미쭈를 크리스마스 밤에 잃어버린다. 날짜가 너무 극적이라 조금 믿을 수가 없다.
어쨌든 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인데 아마도 이 사건은 그가 경험한 첫번째 상실이었을 것이라고. 이 정도 사건이면 미쭈 그림을 안 찾아볼 수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발튀스 <자화상, 고양이 국왕폐하>에 그가 그린 거만한 표정의 발튀스와 그의 애묘 미쭈가 정말로 있었다.
영어로 cocky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역시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발튀스는 고립을 즐기는 사람이라 소수의 사람과 교류하고 집도 성 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그가 말년에 선택한 낡고 거대한 목조 건물 그랑 샬레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워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성에 초대받은 손님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리처드 기어,틸타 스윈튼, 달라이 라마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과 작가수는 꽤 많았지만 다 읽고 나니 발튀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이다.
북향을 좋아하는 작가, 어쩌면 낮보다 밤이, 밝음보다 어둠이 익숙한 사람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차분한 기록과 푸른 그림들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위로를 받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배경을 읽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드바르 뭉크하면 다리 위에서 소리지르며 달려가는 "절규" 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창가의 소녀" 같은 정적인 작품도 있었구나 싶고 던컨 한나, 피에르 보나르 같이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간간히 들어간 작가의 내밀한 경험, 이를 테면 복실이라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데려온 개의 죽음 같은 것이 오히려 내가 알 수 없는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더 깊은 슬픔과 울림을 줬다.
털이 길고 주둥이가 긴 누가봐도 식용이 아닌 애완견이었던 복실이.
기르던 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식용으로 잡아먹는 동네 사람들과 굳이 엄마가 사랑하는 결혼 전부터 기르던 복실이를 데려간 무심한 아버지. 복실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
여기 실린 어떤 푸른색 그림보다 더 묵직했고 대놓고 원망하지 않아도 당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 어울리는 차분한 그림 에세이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