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끔은 보기 위함일 수도 있는 책도 있다. 감상이란, 현상을 감각에 올려놓고 감촉의 온기로 느껴 보는 것. 이 책은 딱 감상용을 위한 책. 물론 사진이 많~아서이다. 사진도 읽기 위함일 수도 있긴 하지만 기본은 일단은 감상부터 하게 되는 감상용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꽃을 감상하고 꽃에서 늘어지는 그림자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의 여행길에 들어서는 방랑족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시경이라고 했는가 한다. 책 속에서 사진과 함께하는 감상적인 시간의 방랑은 낭만스럽기도 하고, 꽃 같은 유혹의 팜 파탈의 감각의 날을 예리하게 고추 세우기도 한다. 꽃과 꽃의 그림자에 걸친 시간의 풍경이라고 정의 내린 책의 성격으로는, 그야말로 화영시경이었다.
알라디너 분들에겐 프레이야님으로도 더 잘 알려진 배혜경님의 세 번째 책. 화영시경이 나왔다. 남편분이 사진도 찍는 분이라서 그런지 사진도 추가되었다. 아마도 책을 보내준 이유가 사진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을 만큼 사진이 수준급이었다. 몇몇 해 동안 사진을 찍어온 본새가 아니었던 느낌이랄까. 오랜 기간 동안 숙성시킨 듯한 사진이 꾹꾹 다져진 내공의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의 언어들은 정교하고 예리하다. 역시 글을 쓰는 아내 옆에 사진을 더해주는 사진이 콜라보를 이루고 결국은 사진과 글이 조합으로 한 권의 책으로 조립 완성되었다.
한결같이 책에서 담긴 사진들이 편안하다. 감각의 날에 서서 꽃들이 춤을 주고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그 모습의 현상을 글은 구상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그래 미술 회화에서 나오는 그 구상은 어찌 보면 대부분 이 현상이라는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추출된 진액들을 모으고 화가들이 작가적 상상과 주장으로 가공시켜 낸 것이 구상일 것이다. 사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책에서 사상의 주장보다는 내레이션이 전부인 것처럼 그러면 그런 감정으로 글을 써 내려갔구나 그런 마음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받아들이는 감상에는 별 이견이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책에서 주장의 강조는 드높아서 지식을 전달하고 정보와 데이터를 담으려 하다 보니 읽은 사람들은 시달린다. 그렇다고 대놓고 노곤노곤한 힐링이라는 위로성 멘트도 아니다. 그러면 그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공감의 그랬구나 이 한마디면 감상의 완성이 이룩될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편안해진다는 느낌이다. 꽃이 우리들에게 주는 힘이다.
일상에서 꽃을 마주하는 일은 대부분 기념일이나 축하할 자리가 많다. 아무런 날도 아닌데 퇴근길에 불쑥 꽃다발을 내밀게 되면 꽃다발의 가치가 바래지듯이 가급적이면 무슨 기념하는 날에 꽃이 주는 기념일을 수식하게 해준다. 혹은, 그런 기념해야 할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꽃에게 말을 걸고 꽃이 전하는 언어를 만나는 일은 대부분 카메라를 들게 되면 쉽게 가능한 일이다. 평생 꽃이라고는 쳐다보지 않는 이가 카메라를 들게 되면 꽃을 찾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꽃으로 만나는 색조의 세계에서 꽃말을 알아듣고, 우리가 인생의 꽃길이란 욕망의 부러움에 투영하기 딱 좋은 이유. 간혹 누군가에게 성공가도를 기원할 때, 꽃길만 걸으라고 하는 것이며, 가시밭길을 가라 하지는 않는다. 흡사 장미꽃길을 걸을 때 장미의 가시는 이처럼 치워진 고난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서 일 것이 테다. 이 책에서 꽃 사진이 나오고 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특별한 기념하는 것도 아니지만 꽃으로 여물어진 감성의 꽃 잔치는 아닐까 했다. 근사한 마당이 있는 집 화단에 철철마다 피어나는 꽃으로 장식하는 마음은 어쩌면 매일매일이 우리가 기념할 시간이 아닐까. 꽃과 함께 늙어가는 노년은 그래서 꽃처럼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꽃같이 피어난다.
이 책에서는 일반 에세이와는 다르게 덤으로 추가된 사진들이 꽤많이 실려 있다. 물론 꽃 사진도, 바닷가 해변의 사진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고 소박한 사진들과 더불어 시인 수준의 감성 짙게 배어든 첨가된 시까지. 책 한 권이 갤러리이자 시집이자 에세이의 다양한 장르의 복합성이 담겼다는 게 사진 감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즐겁고 꽃같이 화사함을 동시에 읽는 감상용의 책이었다. 사회 인문학 같은 논리성보다는 감수성을 끌어올리게 하는 책은 그래서 편안하고 감상의 응어리가 슬금슬금 풀어지고 노곤해지는 효과가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에게 받은 책은 고이 모셔두고 다시 한 권 더 구입해서 줄쳐가면서 포스트잇 붙여가며 읽고 감상하는 재미가 일어나니, 겨울의 무채색 풍경에서 유화 그림 같은 사진을 만나서 연말의 무미건조한 시간에 촉촉한 가습기 같은 풍경을 만나게 한다.
PS : 책 흡족하게 감상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