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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관희 선생님이 번역한 <맹자>의 서두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스승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 역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가슴의 전율을 느꼈다.

 그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을까?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제나라의 왕을 찾아가는 길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상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길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정치를 받아 줄 제후를 만나지 못하고 유세의 꿈을 접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두를 맹자로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맹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 오랜 만에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얼마 전 읽은 맹자의 글귀가 함께 떠올랐을 뿐이다.

 

세계테마기행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2008년 2월부터 시작했으니 '페루'를 3~4번도 더 갔을 것이고

 가까운 동남아는 그 이상을 갔을 것이다.

 늘 대자연의 경의를 만나고, 대자연 속에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 이야기에 시장은 곁다리로 꼭 들어가고....

사실, 한번 씩 세계테마기행을 볼 때마다 참 지루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세계테마기행 '페루' 편은 달랐다.

 그래, 세계테마기행 죽지 않았어, 란 말이 터져나왔으니.

 여행을 하는 '구광열' 교수의 살아있는 맛깔나는 표현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온 몸을 불 사르는 열정, 넉넉함이

 잔잔한 프로그램에 흥을 돋우니 말이다.

 <세계테마기행 홈페이지에서 퍼온 그림>

 그리고, 1편에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를 거의 15분 정도 보여준 듯하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 보통 사람이 평생 꿈꾸는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걷고, 풍경 보고, 썰매 타고, 자동차 트래킹하고)

 사막 위에서 황홀한 저녁노을을 보고 캄캄한 밤을 사막 위에서 맞으니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앞으로 세계테마기행에서 이곳 사막도시를 또 갈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여행의 참맛은 그 도시에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 모두를 다 느껴봐야 되는 것.

 이것이 세계테마기행이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 세계테마기행에서선 수없이 길을 걷는 여행자가 등장한다.

 

 오래 전,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내 마음을 빼앗은 건

 길 위의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머나먼 아프리카땅, 어떤 이방인도 찾아올 것 같지 않고

 이름없이 묻힐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소를 모는 목동은 소 수십 마리를 이끌고

 소를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꼬박 며칠을 걸었다.

 고작 열댓살이었을 텐데...

 그때도 나는 저 소년은 저 많은 소떼를 몰고 며칠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였다.

 

 뭐, 그 소년은 단지 이 지루한 길의 목적지가 빨리 보이기만 기다릴 수도 있다.

 학창시절 나도 학교를 갔다 집에 가는 길 위에서

 끝나지 않은 지루함과 고단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인생의 무게가 적었기에 단지 길이 지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두살을 더 먹고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깨져 보고 방황하고 막막함을 느끼다보면

 길 위에선 늘 많은 생각이 뒤따른다.

 그리고 숨겨진 은유의 잎사귀, 돌부리를 찾게 된다.

 

 나이 먹으면 소설이 절로 써지더라 하는데...

 나이 먹으면 여행은 문학이 되더라...

 

 나의 길 위의 여행과

 구광열 교수의 길 위의 여행과

 맹자와 공자의 길 위의 여행이 같을 수 없지만

 '길 위의 여행'이란 말은

 참 서글프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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