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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균님의 서재
  • 페르소나를 위하여
  • 이우
  • 12,150원 (10%670)
  • 2021-06-10
  • : 46
요즘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딘데 이 책은 첫 장을 넘긴 지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끝까지 다 읽어 버렸다. 여덟 편의 소설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각각의 소설을 모두 다른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에 가지고 있다.

6.25 전쟁 중의 스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원주민을 동경하게 된 현대인. 20년간 과거에 매달려 과거 폐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생. 올빼미 고지에서 군 생활을 마친 이 병장. 군함도에서 죽어가는 조선인들까지. 이 모든 인물이 책 한 권에 등장한다.

소설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인데,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건 ‘야생의 사고’다. 주인공 송석은 쇼핑을 위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난해 피부가 악어가죽처럼 두툼한 원주민들이 사는 섬에서 눈을 뜬다. 모든 걸 잃었지만, 손목의 롤렉스는 남아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만, 롤렉스만은 계속 차고 다닌다. 시간이 흐르고 송석은 롤렉스마저 풀어버린다. 악어부족은 늪의 축복이라는 의식을 통해 대지의 사람에서 늪의 전사로 거듭나는데, 피부에 칼집을 내고 구슬을 넣어 악어가죽처럼 피부를 만드는 것이 이 의식이다. 송석은 이를 동경하며 의식에 참여해 대지의 모래와 결혼할 자격을 얻고자 한다. 의식의 순간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바라던 의식을 뒤로한 채 송석은 롤렉스와 옷가지를 챙겨 들고 달린다. 한국으로 돌아온 송석은 사업장을 운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디선가 뱃고동이 들려와 다시 또 모든 것이 하찮아질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바라왔던 의식이 뱃고동 소리 하나로 아무 의미도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고 싶고, 벤틀리와 파텍 필립을 사고 싶지만, 뱃고동 소리가 들릴까 두렵다.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한다.

이우의 소설들은 재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한다. 첫 번째 읽을 때는 가볍게 읽어봤지만, 다시 읽을 때에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른 시일 내 다른 책으로 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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