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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B님의 서재
  •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 장정일.한영인
  • 18,000원 (10%1,000)
  • 2022-09-01
  • : 468

편지에는 특정한 대상을 향한 글이 담긴다. 직접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가 아닌 만큼, 한 사람만을 위한 문장들에는 충분한 시간을 거친 사유가 뒤따른다. 실시간으로 간결한 말이 오가는 오늘날의 SNS 채팅과 달리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기에 그 호소력은 더욱 짙어지는 것이다.

 

함께 책을 읽고 주고받은 메일 속 편지는 어떨까. “문학은 수다를 떨게 하는데, 그 수다 속에는 진지한 비평과 ‘뒷담화’가 반반”이라는 시인 장정일과 한국소설을 읽고 비평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그 안에 ‘자기 시대의 육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평론가 한영인. 두 저자가 열두 번의 서신을 통해 나눈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모아 엮어낸 책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가 지난 9월에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어떻게 보면 초면의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만 있었죠. 종이 위에 뭔가를 써야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그로부터 행복을 느낀다는 것. (p.23, 장정일)

 

‘은둔의 문인’ 장정일은 수식어대로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1987년에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최연소 수상했지만, 소설작품을 통해 외설 시비에 휘말려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서평을 써오긴 했으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 소식은 듣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한참 나이 차이 나는 평론가 한영인과 만나 편지를 나누며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개인사까지 담아낸 책을 함께 펴냈다.

 

소설가 김유담의 소개로 제주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 흔한 학연, 지연은 물론이거니와 세대 차마저 극명했다. 그럼에도 서로의 사유를 넘나들며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글을 쓴다는 것. 창작자와 비평가의 간극은 분명했지만, 생에서 글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논쟁을 이어가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누군가의 편지가 자신에게 닿는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적어도 아,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p.66-67, 한영인)

 

세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나눈 편지 속에는 같이 읽은 문학에 대한 담론이, 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우리 현 사회의 모습이, 삶에 대한 사유가 담겼다. 그 편지는 서로에게 닿아 고즈넉한 삶 속에서도 다름이라는 틈 사이에서 치열함을 느끼게 했다. 부대끼며 다른 생각을 펼치는 중에도 ‘느슨한 일치에서 맛볼 수 없던 어떤 힘’에 사로잡혀 교감할 수 있었던 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써내려간 편지 속에서 짙은 호소력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저자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다름’이 선사하는 특별한 수다의 즐거움을, 정신적 고양을 맛보게 되는 듯하다.

 

원래의 큰 주제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였죠. (…) 그동안 오간 편지들을 돌이켜보니 정작 사는 얘기보다는 읽고 쓴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제주에서의 제 일상이라는 것이 워낙 단조롭기도 하고 선생님은 읽고 쓰는 일 자체가 곧 당신의 삶이니까요. (p.421, 한영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편지의 시작이자 우리 생의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 모두에게 주어진 질문은 결국 정해진 답은 없다는 어쩌면 당연한 답으로 귀결된다. ‘정작 사는 얘기보다는 읽고 쓴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읽고 쓰는 일 자체가 곧 당신의 삶’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좋은 삶은 곧 현재 우리가 추구하며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의 총체가 아닐까.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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