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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B님의 서재
  • 나를 잊지 말아줘
  • 알릭스 가랭
  • 23,850원 (10%1,320)
  • 2022-03-31
  • : 223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언제의 추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가. 엄마와의 거리는 그 누구보다 가깝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서툴렀던 과거를, 사랑하기에 따뜻했던 품과 사랑하기에 아팠던 상처를 어렴풋이 이해할 즘엔 시간은 이미 속절없이 흐르고 난 후일 때가 많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딸이었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기회를 놓쳐버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할머니의 머리는 그녀가 스무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 집은 그녀의 망상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 유년기의 집은, 바로 여기다. 나 역시도 늙고 병들게 되면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할까? (p.28)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작가 알릭스 가랭의 첫 번째 그래픽 노블 《나를 잊지 말아줘》는 할머니, 엄마, 그리고 손녀 3대에 걸친 여자들의 서사를 담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는 요양원이 싫어 3번이나 탈출했지만 결국 붙잡혀 원치 않는 약물 치료를 받게 된다. 이에 손녀 클레망스는 절망에 빠진 할머니를 구출하고자 납치를 감행한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 살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다사다난한 긴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클레망스는 시간이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음을 깨닫고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당신에게,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당신을 슬프게 하나? 향수에 젖게 만드나? 단번에 사소한 기억들이 엄습해온다. 수요일은 엄마가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오는 날이었다. 그리고 작게 자른 닭 가슴살과 쌀로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사실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수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었다는 것을. (p.148-149)

 


클레망스와 할머니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세 가지 키워드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 키워드는 ‘엄마’다. 클레망스에게 엄마와의 관계는 두 가지가 있다. 물리적 관계에서의 엄마, 그리고 정신적 관계에서의 엄마. 전자는 친엄마와의 관계다. 그녀와는 어느 순간 멀어져 개인적인 속마음까지 편히 털어놓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후자는 할머니와의 관계다. 어릴 적 따뜻한 추억이 훨씬 많고 불행 가득한 요양원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울 만큼 그녀와의 관계는 애틋하다. 하지만 점점 병이 악화되어 가는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반추하고, 그동안은 의사인 엄마의 삶을 알지 못했지만 조금씩 알게 모르게 이해하게 된다.

 

두 번째는 ‘시간’이다. 젊음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다는 착각은 쉽게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은 천천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차 없이 흘러가 누구나 늙음을 마주하게 하고, 때로는 공평하게 나누어 주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늙어 알츠하이머라는 병까지 앓게 된 할머니는 자신이 모든 걸 잊는 게, 딸에게 언젠가 잊히는 게 두렵기만 하다.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물망초의 별명 ‘나를 잊지 말아줘’를 나지막하게 읊는 순간은 그 마음이 담겨 있기에 울림이 크다. 사람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게 시간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우리는 그 속절없음을 느낄 때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각 인물이 가진 ‘이슈’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운 싱글맘, 클레망스는 동성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들은 서로에게 벽이 될 수 있었음에도, 이는 벽이 아닌 끈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방해하지 않는다. 3대가 가진 각자의 서사를 따뜻한 이야기에 녹여내어 진지할 수 있는 이슈를 읽는 이들이 넓고 부드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엄마에게 해야 할 말을 전혀 하지 못했어. 수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야.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법이다.” (p.175, 할머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고 어쩌면 단 한 마디로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어렵길래 우리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는 ‘너무 늦은 때’를 애써 무시한 채 이토록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을까. 《나를 잊지 말아줘》는 그런 모두에게 지금껏 못다 한 용기를 심어준다. 흐드러지게 꽃 피는 계절, 따뜻한 이 순간 잊지 못할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길.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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