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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B님의 서재
  • 모란시장
  • 이경희
  • 12,600원 (10%700)
  • 2022-01-31
  • : 59

‘정겨움’의 대명사 시장. 따뜻한 인심과 부대끼는 정이 가득한 그곳에 ‘폭력’이라는 단어도 공존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세상살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 안에는 사실 없는 게 없을 만큼 살아있는 것부터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것들까지 모든 게 들어있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며 필연적 폭력을 비껴가지 못한 그곳, 다종다양의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들끓게 하는 한 시장이 늙은 개 한 마리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목격된다.

 


축산물 구역과 수산물 구역을 오가며 매번 느끼는 것은 무엇으로 살든 서열을 나누고 생명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라는 사실이다. (p.66)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동물 보호에 앞장선 이력도 없지만, 한 번쯤은 공존과 책임에 대해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경희 작가가 애써 피하고 싶었던 곳에 진열되어 있던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모란시장》으로 돌아왔다. 늙은 점박이 개 ‘삽교’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장날 속 열띤 모란시장의 이면은 지독하게 비릿하다. 무서운 시장 길목의 미로 속을 아빠 명진의 보호를 몰래 벗어나 누비며 줄곧 가혹함을 마주하는 삽교.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기도 하는 것을 보며 복잡한 인간 삶을 보고 듣는다.

 


“이 세상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생명을 죽여서 고기를 먹어왔으니까요.” (p.199)

 


모란시장의 절대 권력자 대도축산의 박 사장과 그의 폭력을 감내하면서 잡혀온 개들을 묵묵하게 도축하는 경숙, 그런 경숙을 약봉지 가득한 방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삽교의 아빠 명진. 삽교와 따뜻한 말을 나누는 고씨 할머니와 오로지 장미꽃만 파는 능평꽃집 여자. 그리고 위험천만하지만 인간과 떨어진 자유를 택한 떠돌이 고양이 송이까지, 다양한 개성이 모란시장이라는 틀 안에서 공존한다. 시장이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듯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은 온정 있다가도 거칠고,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고독하다.

 

시장 내의 실세가 이끄는 대도축산만큼 생사의 갈림길 최전선에 잔혹하게 놓여있는 가게가 없다. 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경숙은 울부짖는 생명을 단번에 끊어버릴 만큼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고요해진 밤이면 아무도 없는 탄천에서 장미꽃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며 늘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런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개한테 하듯 죽도록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박 사장도, 죽기 전 마지막 소리를 토해내는 개들의 아우성도 아닌, 개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다. 꿋꿋하게 박 사장이 아닌 자신이 개들을 도축하고자 고집하는 건 어쩌면 영혼까지 으스러뜨리는 폭력의 잔혹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뭐 그깟 장미꽃이라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 너처럼 밥 처먹고 똥 싸는 사람만 생명인 줄 아냐! 네발 달린 짐승도 생명이 있고 이 작은 꽃에도 생명이 있단 말이다.” (p.82)

 


소설은 이토록 힘의 질서와 욕망으로 빚어낸 참혹한 현실 자체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연대를 통해 굳건해질 평화로운 생명공동체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난무하는 폭력을 돌아보게 만들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능평꽃집 여자의 질문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곱씹어 보게 한다. 책 《모란시장》이 담아낸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 도사린 현재의 삶 자체다.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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