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타인의 시선이 우리 몸에 대한 자기관리의 기준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누구나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 내에서는 깨끗한 피부, 뚜렷한 윤곽과 몸매 등을 위해 필터와 보정까지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젠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까지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 몸을 향한 자신의 시선도 모나기 쉬워졌다. 아무 탈 없는 평범한 스스로의 몸도 자기관리를 자랑하고 보여주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선 파괴적인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E. M. 리피의 장편소설 《스킨》의 ‘한 사람의 평생의 기록을 담은 일지’라는 소개에서도 그렇듯, 인간의 몸은 개인마다 다 개성을 지니고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내 몸은 통통하다. 죄책감에 어쩔 줄 모르는 몸뚱어리. 무력한 나를 내가 지켜본다. 자기혐오와 설탕 덩어리로 가득 찬 공이 되어, 내가 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다." (p.59)
데뷔 소설 《레드 더트》로 아이리시 북 어워드와 루니 아이리시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이번 신작 《스킨》에서 폭식으로 인해 자기혐오에 가득 찬 주인공 나탈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하면 인생을 달리 보게 된다는 말에 훌쩍 떠난 나탈리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뜨거운 날씨와 모기, 그리고 퉁퉁한 자신의 몸에 어김없이 날아드는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하염없이 짓뭉개짐을 느낄 뿐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케이크를 입에 욱여넣는 나탈리는 충동적인 폭식이 아니면 그 공허함과 아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터질 듯한 배를 느끼고 나면 몰려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라는 악순환 속에서 이번에는 자신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파괴한다.
나탈리의 자존감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고통받지만, 발리에서부터 페루까지 이어지는 긴 여행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전 수영 선수, 술을 많이 마시는 룸메이트, 연애 없인 못 사는 친구 등 다양한 타인들을 마주하며 모두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감을 깨우친다. 그리고 저마다 나름의 대처법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몸에 향했던 자신의 모진 시선을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간다.
"이제 남은 건 코르셋처럼 복부를 감싼 붕대뿐이다. 내가 일어난다. 붕대를 끌러 빙빙 풀어낸다. 천천히, 그의 몸이 자유로워진다." (p.351)
스스로를 옥죄는 가장 가혹한 코르셋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이다. 그것을 풀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소설 속 나탈리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내 것으로 가꿔갈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한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함께 거치다 보면, 독자들은 그 시선 끝에 마침내 진짜 자기 사랑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조여 왔던 자신의 시선을 조금씩 풀게 될 것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