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동생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고양이 카페에 본래 키우던 집사가 출산이 임박해 못키운다고 글을 올린 것을 보고 데려 온 것이다. 그렇게 2016년 1월 1일 앙뚜와 처음 만났다.
앙뚜를 키우기 전까지 동물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딱히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비인간 생물체와 사는 것은 초반에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다. 앙뚜를 만질 때 느껴지는 털로 빼곡히 가득 차있는 촉감부터 먹고 씻는 것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행동에서도 이해하고 대처(?) 할 것이 많았다. 앙뚜는 고양이 답게 못 올라 다니는 곳이 없었다. 키가 큰 편인 나조차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려도 앙뚜는 거뜬히 올라갔고 기척도 없이 싱크대로 올라가 요리하는 엄마를 놀래키기도 했다.
하지만 살면서 앙뚜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고 지금은 기분이 어떤지도 느껴지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 한 지붕 안에 짐승과 인간이 같이 사는 건 아니라는 아빠도, 고양이는 눈이 너무 무섭다고 도망다니던 엄마도 이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앙뚜를 부르고, 길에 지나다닌 고양이들도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어본다. 서로 잘 알지 못했던 것이지 알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게 된다고 무조건 살리게 되는 것을 아니다. 관심과 애정을 넘어서서 내가 누리던 편의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다. 캣맘은 단순히 고양이를 좋아해서, 애들이 불쌍해 보여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캣맘이 사회에서 누군가에게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실제로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일 수도 있지만 앎에서 생긴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다. 길을 가다 마주친 고양이와 깊게 아는 사이가 되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어질까봐 애써 외면하는 나는,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서슴없이 나서는 그들의 실천력을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5
"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은 캣맘으로서 정체성 앞에서 번번이 꺾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힘없이 그말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오늘도, 인간 박소영은 캣맘 박소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P32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들이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크 플랜즈[철학자와 늑대] 나는 후디가 만들어준 내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 P39
때문에 캣맘이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다. 이미 자신에게 완전히 기대게 된 고양이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집에서 반려하던 비인간 동물을 유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 P62
[어떤 양형 이유]를 쓴 박주영 판사는 "혐오는 관념에 정주한다‘고 썼다. 대상의 실제를 알게 되고, 그래서 익숙해지면 혐오는 사라진다.- P79
아무리 생각해도 ‘고기‘로 취급되는 동물들과 토라의 차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토라가 기쁨과 즐거움, 아픔 같은 감정을 모두 느끼듯 소와 닭,돼지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 P83
그러나 실천이 어렵다는 이유로 앎조차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P86
영화에 힘입어 나는 또 한 번 다른 내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타인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의 현재를 볼 수 있기를.- P108
글을 쓰기 위해 사욱곰들의 상황을 다시금 찾아보며 좌절했다. 3년 전,취재에 도움을 주었던 동물단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곰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슬프게도 그 말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법과 제도는 느리고, 때때로 그건 의도적이다.- P114
아름다움과 수천 수만 마리 토끼의 목숨을 바꿀 수 없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름다움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중략
다른 생명의 목숨줄을 밟고 그 위에 서서 숨 쉬는 것은 멈춰야 한다. - P119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한 것은 맹세코 아니다. 내가 발 벗고 나섰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오래 남았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세미나에 간 것이다. 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위로 받기 위해서, 동물권 공부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도망치듯 스터디를 빠져나왔다. - P125
르 권은 독자들에게, 누군가의 불행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지 묻는다. - P136
동물권에 눈뜨고 나서 나는 자주 괴로운 마음으로 잠들었다. 충격적인 기사를 보고 울면서 출근할 때도 많았다. 이 ‘앎‘은 자주 나를 뒤흔들고 블편하게 했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비인간 동물과 그들의 삶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이 불편함을 아는 채, 그리고 안은 채 남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기에,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시초지에 남는 편을 택할 것이다. - P138
우리는 ‘생득‘을 벗어나기 어렵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타고난 조건이 사고를 지배한다. 내 입장과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 P147
오죽했으면 다른 사람들 출근까지 늦춰가며 이렇게 시위를 할까. 세상이 얼마나 들어주지 않았으면 이런 방법을 택했을까. 평소 동물권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화는커녕 경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상처받아온 터였다. 그 갑갑함을 모르지 않는 내가, 비인간 동물이 아닌 다른 약자에게는 배타적인 마음을 품은 것이다. - P149
기본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옳은 것을 주장할 때마저 다른 사람의 편의를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명백한 약자였다. 그 앞의 나는, 매일같이 이동권을 행사하며 살아왔음에도 단 하루의 불편도 참지 못하는 비장애인이었다. - P150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입장의 동일함"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타인의 처지를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으로 이해한다고 말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들을 발화하게 하고 그 목소리를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 P152
인류가 망가뜨린 지구를 생각할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한다. - P162
동물들을 구조하고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내게 친구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행복하냐"고. "그 과정에서 정말 행복한 게 맞느냐"고. - P167
‘로드킬‘이라는 말엔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주체도 생략되어 있다. 동물들을 도로로 내몬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기에, 죽음의 책임도 물론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과도한 개발은 동물들의 터전을 허물었고, 갈 곳 잃은 동물은 사람이 사는 곳 근처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P207
동물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을 데려와 촬영에 응하게 하는 행위 자체가 착취이자 폭력이 이유다.
우리가 사회의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동물은 기쁨과 고통을 모두 느끼며, 개별적인 뜻과 의지를 가진 존재다. 그런데도 인간은 동물이 약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고 ‘소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동물은 ‘사회적 약자‘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조차 못할 때가 많다. 약자로 규정되는 것 역시 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을 때, 다시 말해 성원으로 인정받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P214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인간은 비인간 동물을 늘 포획과 착취, 관찰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인간이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보존할 수 있게 했더라면, 코로나19가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못했을 것이다.- P222
동생과 내가 밥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 불러도 깨지 않았다. 그 평화가 너무 달콤해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리 옆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도 고양이와 새, 곤충은 그 자리에 남는다는 것을. 머무리고 지키는 것은 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몫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인간이 땅의 주인임을 자처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 P224
우리는 동물에게도 위계를 적용한다. 동물을 임의로 분류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 인도식 카스트제도를 동물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본 적 있다. 아마 게급의 가장 아래 층에 위치하는 동물은 쥐겠지?- P227
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 P236
인간이 아닌 생명들에게, 그 생명들을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참혹하기만 하지만 이 압도적인 슬픔은 어쩌면 변화의 촉매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는 비폭력적 저항을 하는 인구의 3.5퍼센트로도 기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는데, 박소영 작가야말로 그 3.5퍼센트에 속하겠구나 확신하게 되었다.아물지 않는 마음을 안고도 가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걷는 이들을 있는 힘껏 응원한다. -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