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신경써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나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아몬드'는 여러가지 모습의 청소년들이 누군가의 관심 혹은 사랑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해도, 유년기 결핍이 있어도,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해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일어설 힘을 얻는다. 관심과 사랑은 누군가에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특별부록-외전 단편> 상자 속의 남자
각박해지는 사회 속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손해 보게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비추고 그에 따른 행동력을 발휘했을 때 나비효과처럼 그 영향력이 퍼지고 그 변화는 다시 나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울림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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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은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거다. 나는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P30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P43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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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럴 거야. 어떤 방황이든. 그게 인생이나까.- P51
자기네들 맘대로 낳아 놓고 왜 자기들이 정한 미션을 내가 수행해야 되는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하는 거잖아.- P63
도라는 아름답다는 말을 참 자주 했다. 나는 그 단어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찬란함까지 생생히 느낄 수는 없었다. - P67
-그 대신 다른 걸 얻었어.
-뭔데.
-곤이.
도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네가 걔를 찾으로 가야 해?
마지막으로 그 애가 물었다.
-그 앤 내 친구니까.- P76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아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82
-네가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사과해. 진심으로. 네가 날개를 찢은 나비나 모르고 밟은 벌레들에게도. - P83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P86
그들에게 그런 삶을 허락한 건 형이다. 그 대가로 그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욕창이 가득 번진 몸으로 의미 없는 숨을 쉰다. - P86
누가 도와 달랬어요? 감사하다고 충분히 말했잖아요. 한 번 도움을 받았다고 평생 죄인처럼 살라는 겁니까? 그러니까, 누가 도와 달랬냐구요......
피해자는 가해자만 원망한다. 그러니까 형이 가만히 있었더라도 문제될 건 없었다. 그 부부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울리지 않은 트럭 운전사를 저주했겠지만 형을 나무라진 못했을 거다. 그들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은 형에게 감사했다.그러나 감사의 대가는 통렬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거짓말이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하는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다. 나는 깊은 밤 형이 고통과 회한에 울부짖는 모습을 수 없이 봤다.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쉽게,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고,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 P89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실에 분노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 생각은 조금 더 합리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람들이 쉽게 감사의 마음을 잊는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햄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명심하고 새겨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P89
-있잖아.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만약이란 건 없어. 그건 책임지지 못할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어떻게 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고.
형이 나를 바라봤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는 기뻐지는 거야.- P93
나는 그 상처를, 누군가가 살아남은 흔적을, 또 다른 누군가가 불어넣은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이는 내 눈빛을 끄덕임으로 이해했는지 씩 웃고는 바람처럼 달려 사라졌다.
정말로, 빨랐다.- P96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에서 출발해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할 만한 두 아이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윤제와 곤이다.- P96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P96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부모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