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님한테 내 생각과 인생을 염탐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작은 신념이라도 고수하고 지켜나가는 사람을 존경하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불의를 보면 같이 분노하고 옳은 편에 서있으려 하나 비교적 소극적이다. 영아가 은주와의 관계가 불편하기보다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로 한 것처럼. 아픈 사람들의 삶을 동정하고 도움을 주려 하지만 한편으론 나보다 큰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아닐까 여길 만큼 바르게 살려 노력하지만 착하게 살아도 꼭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영아가 받은 실험인 뇌에 글루타메이트 수용을 제한해 통제 능력을 잃으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잠시 자유를 느끼고 해방감을 느낄진 몰라도 내가 추구하는 모습의 틀을 벗어나 버린 나의 모습에 다시 괴로워할 것 같다. 사실 이런 마음 자체가 작가님이 보여준 영아가 갇혀있는 굴레일지도.
그런 의미에서 책 초반에 골칫거리처럼 보이던 은우가 어쩌면 영아가 도달하고 싶었던 이상적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 나 자신이 무엇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지 알고 당당히 요구하며 원치 않는 대우를 받았을 때는 바로 들이받을 수 있는 마일로.
오렌지 빵칼로 영아에게 늘 좋은 사람이었던 수원의 목을 그은 것은 영아를 그동안 힘들게 했던 '내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기'를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P.S. 단순히 분량이 작아 읽기 시작해본 책인데 작가님의 독특한 문체와 가벼워 보이는 이야기 속 철학적 사유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읽었다. 청예 작가님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스포일러 주의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버릴 장면과 내용이 없었고 모든 떡밥이 회수되는 것에 희열이 있었다. 특히 수원이 서향의학연구센터로 소개해 준거랑 실제 은우의 아빠라는 것을 넘나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책 마지막에 옥돔해장국 영상 깨알 재미었다 크크
정작 그때도 지금만큼의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시간이 추억으로 이름을 바꾸면 제법 찬란한 것으로 포장된다. - P9
더 나은 선택을, 더 많은 고민을 품는 것이 진정한 시민 의식이라고 생각하기에- P22
"혼자서 입안에 저질 재료를 넣는 희생은 감수해도, 남들에게 도둑질로 비난받는 일은 절대로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거에요. 똑똑한 사람들은 겁이 많거든요."
"그건 그냥 도덕적이라는 뜻 아닌가요?"
"겁이 있어야 도덕을 지키죠."- P22
고맙다는 말만큼 무고한 거짓이 또 있을까.- P25
얕은 안쓰러움 속에는 영약한 흥미가 숨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잘 살피면 안도감도 보였다. 이것이 내가 굳이 과오를 숨기지 않고 무시받길 자처하는 이유였다. 은주는 나의 반성하는 얼굴을 예뻐했다. 저질러 버린 잘못에 변명할 여지조차 구하지 못하여 굴종하는 일.- P28
일차원적인 존재가 되는 일은 나의 안전이 아니라 그녀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다면체가 되기를 거부하며 평면적으로 잘못하고 사과하기를 반복하는 이유였다. - P30
삶은 이런식으로 노력을 자주 비껴갔다. 단일 선택지가 선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병렬적으로 쌓이면 악행으로 치닫기 쉬웠다. - P34
사람들은 자신이 품은 우주를 설명하는 일을 좋아했다. - P44
"신은 우리를 버려도, 우리는 우리를 버리지 못하니까요."- P56
타인의 괴로운 삶을 관음하는 건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타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을 목도하는 쾌감이 일었다. - P58
고역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삶은 그것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안전하다는 기쁨이, 내 삶은 구질구질한 자들보다 곱절은 더 찬란하다는 안도가, 더러운 것들을 발로 짓뭉갤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폭죽처럼 터졌다. 이따위 인생들에 비하면 수원을 싫어하고, 아이를 싫어하고, 고양이를 싫어한 나의 과오는 과오 축에도 끼지 못하리라.- P59
샤덴 프로이데 (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그들의 불행에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니 일말의 책임 또한 없었다. - P59
세계를 위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지조는 공공의 것이었다. 반면 내 팔뚝을 스치며 지나가는 저 무수한 개미 떼의 행복은 지극히 사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독려하는 능동적 소비의 정점은 저들의 삶 자체였다.
25마트에 들어찬 소비사회의 먼지들을 보라.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소비란 높은 확률로 죄악이 됨에도 저들이야말로 먼 미래의 승자고, 나보다 잘살 인간들이었다. 정신적 쾌락이 우월하다는 믿음에 따라 움직인 나의 미래란 수원과 결혼하여 구질구질한 삶은 사는 것이고.
공공을 위하는 만족, 그것이 희생시키는 사적인 행복이야말로 도덕이라는 쾌락이 가진 양면이었다. - P64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 P67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 P67
도덕적으로 산다는 건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회피였다.- P74
만약 내가 주변인을 해치고 상처 주는 일마저 감당하게 된다면 나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 모습을 상상했다. 도파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고,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선명했다.
허망하기도 했다. 그토록 소중히 지켜왔던 ‘통제‘란 내게 무엇이었나. 그것이 내 세계의 종교였다면 자유는 내 세계의 구세주였다. - P84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했지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한 적은 없어요.- P87
"뭐든지 균형이 존재해야만 극단으로도 치달아 볼 수도 있지요."- P87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전시하여 어느 쪽으로도 인생을 내던지지 않았다. 배덕과 도덕의 중앙에서 줄타기하는 인간은 흔치 않은데,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 P87
하얗다면 올곧이 하얗고, 검다면 올곧이 검은 내가 될 수는 없는 걸까.- P92
그래서 대자는 ‘결여태‘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여된 존재로 남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결여를 채우는 게 가끔은 버겁다. 있는 그대로 수용되길 원한다. 비록 내 도덕성이 상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내가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해도, 심지어 그 정의에 균열을 만드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냥 살아 있고 싶다.. 있는 그대로.
나는 그런 우리에게 공감을 던지고 싶었다. 공감과는 가장 거리가 먼 말들로. - P98
끝으로, 당신이 조금 덜 도덕적이어도 나는 당신을 좋아할 수 있다. 이해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인간이니까. 그러니 타인을 마주하는 일에 괴로룸이 없기를. -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