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즐거웠던 추억밖에 없다. 그렇잖냐. 그땐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됐잖냐. 우리 둘 다 젊었지! 운명의 장난으로 어려운 처지에 몰린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절실하게 필요 로 했다는 게, 이미 오래전에 탐정을 은퇴한 지금도 자랑스럽다. 그때 생각이 날 때마다 가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과거가, 번듯한 일을 해냈다는 젊은 시절의 기억이 있다는 게,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정신을 지탱해주더란 말이지.
P.22 중에서 - P22
언론의 폭주로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인으로 찍혔던 그 시절하고 똑같잖냐. 지금 우리가 딱 그 모양이지. 개인의 목소리가 파묻혀서, 폭주의 본체, 옛날로 말하면 언 론이며 경찰, 지금 같으면 인플루언서한테 주장이 묵살당하고. 잘못된 정보가 세상에 유포돼서. 그야말로 도플갱어 같은, 우리랑 생김새는 똑같은데 완전히 딴 사람인 우리가
SNS에서 우리랑 상관없이 확산돼서. 인플루언서의 행동 하나로 그 작자한데 컨트롤되는 인간들이 흥미 본위로 대거 몰려와서. 숫자가 워낙 엄청나게 많으니까 장난질이랑 정의감이랑 심심한데 마침 잘됐다는 작자들의 사념이 눈사태처럼 밀려드는 거야. 짜부라뜨릴 것 같은 기세로.
P.65 중에서 - P65
지금 우리 적은 누굴까. 우리는 시대의 뭐에 난데없이 쫓기기 시작한 걸까. 과거 빙하기 세대의 불쌍한 젊은이 중 하나라고 엄청 무 성의한 말로 요약되고 말았지.
P.67 중에서 - P67
명탐정도 범인이나 범행 방법은 추리해주지만 범인의 마음속은 범위 밖이죠. 마음이라고 할지 심리의 깊은 부분이라고 할지.
P.174 중에서 - P174
불안과 동시에 존재하기에 행복은 한층 달콤했다. 평소 애써 무시했던 온갖 불안 요소가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해, 그런 만큼 지금 이 순간만의 행복한 기분을 꼭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불행해진 다음에 떠올리기 위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P.178 중에서 - P178
두려움을 모르는 고독한 영웅.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랍니다. 바꿔 말하면 위기 시에 의지가 되는 사람이에요. 허크도, 자기 편이라고 생각한 도망 노예인 짐을 돕기 위해서...
P.217 중에서 - P217
평범한 사람은 생각도 못 하는 대담한 해결법이지만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은 길을 택해 모두를 살리려 하죠 . 그런 위험한 도박에 사람들을 끌어들여요. 그 결과, 기적적으 로 성공하는 경우에는 히어로가 탄생하지만 실패하면 모두 죽거든요. 히어로는 좀 도박꾼 같은 이미지도 있지 않나 싶어요.
P.228 중에서 - P228
젊었을 때가 죽는 게 더 무서있을지도 몰라. 앞으로 즐거운 일이 잔뜩 있을 텐데 아직 경험 못 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도 생중계를 보면서 패닉에 빠져 엉엉 운 걸까. 그렇지만 지금은, 그러게...
P.233 중에서 - P233
규범이란 게 존재하죠. 사회의 치안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경찰 기구, 법률, 정치, 이들이 유지하는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도 치안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뛰어넘어, 개인이. 아마추어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좋고 나쁨을, 범죄의 유무를 정한단 말이죠. 게다가 거기에 모종의 권력도 발생합니다. 그 권력, 바꿔 말해 명탐정의 예외적 특권을 우리 시민 사회가 허용한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요? 만약 명탐정의 판단이 틀렸다면? 누가 책임을 질까요?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P.252 중에서 - P252
완벽한 최선의 결과를 내는 건 늘 불가능했어. 그럼 차선의 결과에 착지하고자 노력하는 게 어른의 판단이다.....차선이면 충분하잖냐? 충분하고도 남잖냐? 좌우지간 그때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고.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명탐정한데 매달리는 사람이 많았어. 우리 는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지금 이 순간 추리하는, 지금 이 순간의 존재였어. 그렇기에 명탐정이었던 거야.
P.331 중에서 -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