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제거하고도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수 많은 논쟁과 반대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감정이 아닌 이성이라는 결론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던 건 과학적 이론도 인문학적 추론도 아닌 감정 제거술을 받은 이들의 성공이었다.
P. 18 중에서 - P18
매일 보았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낼 수 없으니,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외면하고 나면 진짜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P.35 중에서 - P35
어떤 표정도 없고, 오직 사무적인 말만 내뱉는 사람. 기계나 다를 바 없다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하리는 친절하고 배려가 넘쳤다. 감정 보유자와 함께 살기 때문일까. 타고났기 때문일까. 감정을 제거한 것이 인간성을 상실한 것처럼 구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으로 비쳤다.
P.41 중에서 - P41
사랑이 식는다고 사람을 죽이진 않지. 이혼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수술할 수도 있는 거고.
P.49 중에서 - P49
감정이 없다고 해서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 다. 감정 제거자에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상대를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융통성조차 발휘하지 않았고, 어떤 이는 의견 일치가 나올 때까지 끝없는 토론을 이어가야 했다. 때때로 이성은 감정보다 질기다.
P.56 중에서
- P56
50년이 지났는데도, 예전 입버릇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습관이라는 게 참 신기하죠.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감정이 내포된 단어는 여전히 남아 있죠. 그러고 보면 가장 위대한 건 감정이 아닌 언어일지도 모르겠군요.
P.64 중에서 - P64
감정이 없다는 걸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 번도 감정을 소유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타인의 삶까지 보호해 주려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단 한 번도 거만해지지 않은 사람. 세상이 제 것처럼 굴지 않는 사람.
P.76 중에서 - P76
감정 제거자와 결혼한 감정 보유자라면 감정을 억누르는 방법 하나쯤은 갖기 마련이다. 통하지 않은 감정은 끝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었고,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혼자라도 해결해야 했다.
P.80 중에서 - P80
사랑은 설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야. 이 사람과 어떤 삶을 살아갈지 의지를 다니는 것도 사랑이지. 그런 것도 사랑이라 생각하면 다른 건 다 괜찮다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좋아할 리도 없으니 얼마나 편하냐고.
P.92 중에서 - P92
감정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적도 있었다.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오색찬란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을까. 기쁨으로 가득 차서 발바닥부터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까. 하지만 궁금증은 궁금증일 뿐이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많아질 테니까. 온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우울감도 느껴야 할 테고,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불안감과 싸워야 할 것이다.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을 무겁게 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하리는 겪고 싶지 않았다.
P.107 중에서 - P107
모두가 감정 제거술을 하려고 하겠죠. 자신의 아이에겐 감정 무소유자 타이틀을 주고 싶을 테니까요. 그렇게 다들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 겁니다. 자신에게 감정이 있건 없건 다르지 않을 겁니다.
P.145 중에서 - P145
후회라기보다는 알게 된 거죠.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요. 허상을 좇고 있는 거죠.
P.145 중에서 - P145
테스트의 말미에 들었던 주의 사항이 떠올랐다. 감정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건 행복도 슬픔도 아닌 혼란이라고 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거라고.
P.181 중에서 - P181
감정을 판단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된다. 시시한 사실이었다. 그 시시함을 감수하려는 이가 많지 않을 뿐.
P.197 중에서 - P197
모든 게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세계를 무너뜨리는 건 간단하다. 상징을 끝내버리는 것.
P.201 중에서 - P201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길 바란다면 믿는 건가. 적어도 한 명쯤은 나를 속이는 게 아니길 바랄 뿐이야.
P.220 중에서 - P220
노이모션랜드는 성역이 아닙니다. 환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세상엔 완벽한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없는 세계는 위험한 도박의 세계입니다. 이성을 제어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P.249 중에서 - P249
최악의 일이 벌어지기 전까진 민낯을 볼 수 없다. 감정이 없는 세계에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감정이 없어도 분열은 일어난다. 그 분열이 끔찍함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의심스러웠다.
P.252 중에서 - P252
감정 제거술을 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얻게 되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심입니다. 자신이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감정을 돌아보게 되죠.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저들과 같다. 그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데스트 결과를 받아들이죠.
P.258 중에서 - P258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답은 있으니까요. 50년 전, 사람들이 감정을 버렸던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겠죠.
P.270 중에서 - P270
감정이 깨어났다고 확신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본능과 감정에 차이가 있긴 한 걸까. 세상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P.274 중에서 - P274
내가 어렸을 땐 고양이는 요물이라고 했어요. 사람 마음을 갈아먹는다고. 나는 그 말이 참 싫었는데 , 이 녀석을 키우면서 알았죠. 고양이한테 마음을 뺏기는 게 무서웠던 거구나. 애정을 요구하지도 감사하지도 않는 도도한 녀석들에게 화가 났던거구나. 재밌지 않나요?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 존재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졌다는 게. 그게 설령 그토록 싫었던 감정을 껴안던 일이라도 말이죠.
P.280 중에서 - P280
사랑한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설사 두 사람 사이에 사람에 생겼다 하더라도, 처음 계약과 달랐으니까. 복수를 다짐한 마음이 무너지고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하게 사는 건 드라마 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현실은 이렇게 끝내 비극을 향할 수밖에 없다.
P.300 중에서 - P300
감정 보유자들은 화가 나서 사람을 패죠. 감정 제거자는 잔인하게 사람을 패요. 감정이 폭력성을 유발할 순 있어도, 폭력이 감정과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P.327 중에서 - P327
감정이 없는 애들끼리 싸우거나, 감정이 있는 애들끼리 싸우면 모두가 싸움이 원인에 관심을 가져요. 감정이 있는 애와 없는 애가 싸우면 얘기가 달라지죠. 누가 잘못한 건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 감정이 문제가 여기죠.
P.329 중에서 - P329
인생은 탄탄대로일 수가 없거든. 매끈하게 뻗어있기만 한 인생이라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거야. 본인만 모를 뿐이지.
P.335 중에서 - P335
그럴 리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뭔지 알아? 감정을 없애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감정만 없애는 게 아니야. 다른 것도 함께 포기하는 거지. 성공을 위해서.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고, 그 대가는 내 감정으로 치를 수 있는 게 아니야.
P.339 중에서 - P339
진실을 구별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눈빛이에요. 어떤 거짓도 눈빛까지 속이진 못해요. 거짓은 흔들리기 마련이에요.
P.346 중에서 - P346
모든 건 허상이에요. 허상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허망함뿐이에요.
P.352 중에서 - P352
세상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그 세상에 금이 가버렸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됐을까. 삶을 피곤하게 만든 이들이었지만.
P.375 중에서 -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