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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서사시를 읽으면서 진정한 영웅이 엔키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내가 엔키두를 좋아한다거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서사시의 저자가 계속 엔키두를 높이고 있음을 내가 발견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많은 반론이 제기되겠지만, 나의 주장을 전개해 본다.
1. 탄생 부분
길가메시의 탄생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신이 그를 “야만인의 황소”처럼 만들었다는 부분만 존재한다. 즉 이 땅에 보내진 특별한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엔키두는 다르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를 물리치러 이 땅에 온 것이다. 성서에 비유하면 기드온이나 다윗 같은 사람이다.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되어서 신들의 회의를 거쳐 태어난 아주 신성한 사람이다. 길가메시와는 비교가 안된다.
2.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싸우는 부분
28페이지에 보면, “둘은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황소처럼 붙들고 늘어졌다. 그 바람에 문지방이 부서지고 벽돌이 흔들렸다. 마치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그들은 서로 엉켰다. 문들이 박살나고 벽들이 흔들렸다. 드디어 길가메시가 땅 속에서 다리를 박은 채 무릎을 꿇었고 이어서 엔키두도 쓰러졌다. 그 순간 그의 난폭한 성질이 사라졌다.” 라는 부분이 있다. 결국 대결에서 엄격히 따지자면 엔키두가 이긴 것이다. 길가메시가 먼저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길가메시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싶었더라면 엔키두먼저 쓰러뜨리고 길가메시를 쓰러뜨려야 됐을 것이다.
또 한 부분은 “그 순간 그의 난폭한 성질이 사라졌다”이다. 둘은 서로 싸우는 가운데 정이 들었다. 정이 든다는 것은 마음이 맞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엔키두의 생각 쪽으로 마음이 맞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길가메시의 마음이 변해서 엔키두처럼 되었을 때, 이 둘을 친해질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엔키두의 위대성이 증명된다.
3. 엔키두는 장군, 길가메시는 병사
2장의 “숲 속의 여행” 부분에서 보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같이 훔바바를 죽이러 간다. 죽이러 가면서 길가메시는 겁쟁이이다. 엔키두가 용기를 계속 불어 넣어 준다. 길가메시는 꿈도 꾸며 불안해하면 엔키두는 꿈도 좋게 해석해주고 곁에서 지켜준다. 마치 장군과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장군은 적을 무찌르러 가는데, 병사들이 겁을 먹고 따라오질 못한다. 그러자 장군은 병사들에게 사기를 불어 넣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훔바바와의 싸움에 임했을 때, 엔키두가 준 용기와, 샤마시의 도움으로 이긴다. 샤마시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엔키두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다. 즉 장군의 노련한 계획으로 병사들이 전쟁에 나가 승리한 꼴이다. 이 승리가 길가메시의 것이 아니고 엔키두 것이라고 증명할 만한 구절이 마지막에 나온다.
오, 길가메시, 그는 왕이며 공포의 화염을 정복한 자다. 그는 들소같이 산속으로 쳐들어갔고, 바다를 건넜다.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그리고 더 큰 영광은 엔키두의 용감함에 돌릴지어다! 물론 열심히 싸워준 병사에게도 영광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길가메시도 영광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은 장군이 받기 마련이다. “더 큰 영광은 엔키두의 용감함에 돌릴지어다”라는 부분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엔키두라는 것을 저자가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길가메시가 황소를 죽이는 장면에서도 엔키두가 시키는 데로 해서 승리를 얻게 된다. (p.61)
물론, 말도 안 된다며 비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면서 이런 부분이 눈에 보여서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내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리라고 보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는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길가메시 서사시를 두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2배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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