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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뒤적 거렸던 책이다. 그래서 책장을 정리하면서 어떤 내용인가 하며 읽게 되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도록 이 책은 책꽂이에 남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예수에 대한 많은 읽을거리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사해의 언저리'는 가끔씩 나의 신앙이 변질되어 갈 때마다 읽어야 할 귀한 책이라는 것을 새삼 전해준 고마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끌렸던 몇 부분을 통해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국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 모세처럼 사람들을 끌고 갈 힘도 없지 않았냐 말야. 예언자 엘리야처럼 기적을 보여줄 능력도 없었고, 그는 쓸모없는 무능자였어.'(p.81)이는 예수를 향해 군중들이 던지는 말이다. 또한 오늘날 예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강력한 권력, 위대한 기적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성숙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권력과 기적 때문에 신앙을 지탱해 나갈 수 없다. 그것은 순간 일뿐이다. 계속되어지지 않으면 또다른 권력과 기적을 찾아갈 뿐이다.
'사해의 언저리'에 등장하는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상이 아니다. 그는 철저한 인간이다. 너무도 철저한 인간이기에 그는 사랑밖에 할 줄 모른다. 이 예수를 깊이 되새겨 보게 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하는 동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를 어떻게 믿고 기억하고 있을까? 이 책에서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중에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온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로마보다도, 율법보다도, 종교보다도 오래오래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때 빌라도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아파한 그 상처,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했소.'(p.173)

엔도는 예수가 주님이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그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그와 만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코자 하는 사람, 그를 삶의 진리로 믿는 사람)의 깊은 상처를 함께 아파하기 때문이라고 피력한다. 이러한 예수의 의미는 거의 마지막 부에 와서 십자가로 향할 때에 그의 독백에서 어두움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친다.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면서 말한다. '모든 이의 죽음의 고통을 나에게 짊어지게 하소서, 만일 그러하므로 병든 자, 어린 자. 늙은 자들의 고통이 몰수된다면.'(p.251) 하지만 엔도는 예수의 이러한 메시아적 의식이 결국은 하나님께 달려 있었으면 놓치지 않는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나. 예수를 넘어 만나고 체험해야 할 분은 하나님임을. 이러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예수는 그의 생애를 살았음을 말하고 있다.'모든 것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p.270)

끝으로 '사해의 언저리'가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하나의 선상에서 전개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현재 예수를 찾는 한 일본인의 갈망과 예수의 생애가 어우러져 있다. 이는 곧 현재 나와 예수와의 만남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마태, 누가. 마가. 요한의 복음서라고 부르듯이, 엔도 슈사꾸의 복음서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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