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익숙하다. 남편이 훌륭한 아내를 두고 어린 애인과 바람을 피우다가 애인을 임신시키고 이혼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선택은? 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글솜씨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힘든 지금 세상에서 이만큼 독특한 관점에서 새로운 서술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작가는 예술적 글쓰기와 심리학적 분석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는데, 예술 잡지의 편집자로서의 경험과 심리학 공부가 독특하게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여성으로서, 작가는 가족 관계, 연인 관계, 부부 관계에서 여자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드러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주인공 조디는, 딸로서는 남자 형제들과 동등하게 대결할 거란 기대를 얻지 못했고, 여동생으로서는 손쉬운 피해자였고, 연인으로서는 뮤즈, 아내로서는 이해심 많은 안식처였다. 그 어디에도 주인공 조디의 의지는 들어 있지 않았으나 결국 이것이 조디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면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나 자신을 새로이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남편의 부정과 배신으로 평온한 생활에 위기가 닥친 조디는 지금까지완 전혀 다른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삶을 장식했던 가식적인 평온은 이제 없다. 조디의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변화는 작품 말미에서 예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가 가식적으로나마 평온을 지키려고 했던 이유, 지금껏 남편의 습관적인 외도를 눈감아줬던 이유, 이제는 참지 않기로 한 이유가 모두.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성폭행했던 팀 닥터 래리 내서를 고발한 카일 스티븐스의 말처럼, 강력하면서도 조용한 여성들로 인해 세계는 바뀔 것이다. 반전이랄지, 작품 말미의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조디의 세계는 물론 나의 세계도 영영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 긴박한 서스펜스보다는 촘촘하게 쌓아올려 완성한 여성의 인생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잘사는 인생이란 주변 사람들의 개별적 욕구와 특이성을 함께 수용하는 태도를 기반 삼아 계속 타협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아닌가.- P35
이때 딘은 십 년 전에 죽은 아내가 부활하기라도 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세상 최고의 아내가 아니었단 말은 하지 마." 딘은 말한다.
"인생에 딱 한 번 오는 여자였지."
"망할, 여신 같은 여자였어." 딘이 말한다. "망할, 그 여자를 얼마나 숭배했는지. 너도 알지."
그는 토드의 확인을 기다리고, 토드는 기꺼이 그 기대에 따른다. 토드의 마음속에서 이 순간 딘의 감정과 아내 생전에 그가 여러 번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