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홍콩 영화 ‘프리퀄’을 써내려 가는 방법>
우리는 점점 더 우리만의 것이 담긴 경험을 원한다. 무조건 유명한 것을 좇기보다, 우리의 관심, 애정, 눈길과 맞닿아 있는 장소들을 선택한다.
요즘은 그것을 내 ‘감성’으로 부른다. 내가 가진 감성을 가득 채운 경험에서 마음이 충만해지고, 오래도록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홍콩 영화를 따라 걷는 홍콩의 길거리, 식당은 우리가 익히 들어보고 만난 영화 속 인물들에 푹 빠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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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 한 명 한 명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마음껏 상상하게 된다.
<중경삼림>에서도 그랬고, <심동>에서도 그랬지만,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지나친 그들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 …
하나의 공간 안에 이렇게 서로 다른 영화가 만나고, 별개로 흘러갔단 서로의 시간이 겹쳐 이야기를 건네는 곳이 홍콩 말고 또 있을까.
정말 홍콩은 그 자체로 영화 같은 곳이다. 이것이 우리가 홍콩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홍콩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나는 <중경삼림>의 한 장면으로 유명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난다.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반대 방향에서 지나가는 주인공처럼, 괜스레 그곳을 가면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의 뒷날개에도 적혀있듯
“어쩌면 홍콩영화가 첫사랑이었던 수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장국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는 사람들, 양조위의 눈빛만 봐도 심신이 정화되는 사람들, 장만옥을 떠올리며 괜히 천천히 걷는 사람들,
그런 헤어진 이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홍콩의 거리를 걷고 있다.”
홍콩의 거리를 걸어보는 생각, 홍콩 영화 속 배우를 떠올리고, 영화 속 장면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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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홍콩영화에 푹 빠진 사람의 여행기이기도, 홍콩을 속속들이 알려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프롤로그 다음 장의 ‘홍콩 영화 지도’는 이 사람 정말 홍콩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홍콩의 지도 곳곳에 있는 영화 촬영지, 등장인물들의 발자취를 세세하게 따라간다.
10년전 책의 개정판인 만큼, 현재의 독자를 고려한 것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는 바로 QR코드! 휴대폰으로 인식하면 구글 지도로 장소를 볼 수 있다.
실재하는 공간을 따라가 보며 양조위와 장만옥의 ‘골드핀치 레스토랑’에서의 밀회를 엿보기도,
장국영이 즐겨 찾던 음식점 ‘예만방’과 ‘모정’을 눈으로 방문하고,
장국영이 <아비정전>에서 운동하던 남화체육회에서 영화에 담기지 못한 장면들을 상상하기도 한다.
장소마다 작가가 경험한 우연한 만남도 주목할 포인트이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2층 클리퍼 라운지에서 만난 관지림과 나눈 장국영에 대한 짧은 대화, <망부성룡>의 집을 찾아가다 만난 진가신, 오군여 부부. 홍콩의 영화를 따라 걷다 만난 영화 속 배우들이라니 정말 로맨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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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여기다.
p.51 돌이켜보면, 영화 촬영지를 찾아다닐 때 이제 그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을 익히 알면서도 굳이 찾게 될 때가 있다. 내게는 남화체육관이 그랬다. 아비가 이곳에서 무슨 운동을 한 건지 현장검증을 하여 단서를 찾아내고 싶었다. 추리가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30년도 더 된 옛 영화의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흥이 생겼다. … 그렇게 영화 촬영지에 오게 되면 한 영화의 상영시간 안에 다 담을 수 없었을 수많은 다른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 그렇게 나만의 <아비정전> 프리퀄을 써나갔다. 어쩌면 그것이 지겨울 수도 있고 허탕 칠 가능성도 높은 ‘시네마 투어’의 재미다.
장소에 가서 영화에 담기지 못한 시간을 상상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만의 홍콩 영화 ‘프리퀄’을 써 내려갈 수 있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