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방놀이터˘◡˘
  • 서성이다
  • 장강명
  • 13,500원 (10%750)
  • 2026-08-05
  • : 25,480

이것은 저자의 이야기이기도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했다. 소설은 이지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촘촘한 시간을 풀어내는 것은 안시찬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사흘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20여년간 살아온 부부라는 관계성과 각각의 개인적인 성향, 주변 가족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방식은 그 일이 벌어진다 한들 갑작스럽게 변하진 않았다. 지수와 시찬의 시간이 어그러진다 한들 사회속에서 수행해오던 각자의 역할과 약속들은 여전히 이행되어야했다. 익숙했던 세상이 무너졌으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해야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그게 뭔 대수냐 싶은 타인들의 시간. 소설은 사흘이지만 저자가 남겨둔 글에는 이후의 시간을 독자가 가늠하도록 만들었다. 희망적이든 비관적이든 이어질 내용은 그렇게 독자에게 맡겨졌다.

인터넷 서점의 카드 문구가 사람을 잡아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동안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서성이는 한 남자의 3일.

그리고, 책 표지는 동이 트기 전 같은 짙은 푸름과 진한 고요를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놓여진 섬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남자의 뒷모습.


이 책을 도착한 그날 밤 반절을 읽었고, 다음날 사무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찬과 지수의 시간을 먹어 삼켰다. 외면 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나도 그리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이니까. 삶이란 매번 뒷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태반이니까. 그래서 읽던 책들을 모조리 외면하고 읽어내었다. 편집장의 소개글을 보며 이러다 눈물 광광 쏟아내며 책장 넘기고 있는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눈물이 안 났다. 시찬이 우는 만큼 나 또한 시찬에게 이입되어 감정을 꾹꾹 눌러도 넘칠거라 생각했는데 미간에 힘만 들어가고, 어금니만 더 세게 깨물게했다. 울어봤자 소용없어의 마음도, 운다고 달라질게 없다는 마음도 아니다. 시찬에게 헛된 기대보다 확실한 팩트 전달과 이후의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주고싶었다. 감성에 젖어드는건 시찬의 몫이고, 나는 그가 덜 헤매도록 확실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픈 마음이 컸다. 지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내기도 벅찰테니 다른데에 신경쓰고 마음쓰는 일을 덜어주고픈 것이 내 감정을 꽉 움켜쥐게 했다. 굳이 나의 눈물까지 보태지 않겠노라 싶은 생각으로 사흘을 같이 버텼다.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의 안시찬은 장강명이기도 했고, 또 장강명이 아니기도 했다. 아내가 아픈것은 맞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각의 요소들이 재편되었고 일부의 이야기는 좀 더 극대화되어 예민한 구석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슷한 감정과 비슷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은 동일해보였다. 그렇게 시찬은 지수의 곁에서 '서성이다' 와 머물기를 반복 할 것이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믿을 구석을 찾기보단 내가 의지되어야하는 버팀목의 주체가 되어야함을 자각한다.(서로의 보호자인 부부 둘,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한 다리 건너의 가족, 업무와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더 먼 방관자의 존재이니 바짓가랑이 잡으며 징징거릴 여력이 없다) 더욱 예민해지고 무감한 상태로 타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몇몇 보인다. 그건 시찬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의지이기도하다. 그러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할 때 터져버리는 눈물샘과 꺼이꺼이 울게되는 서러움. 하루 전만 해도 깔깔거리고 쫑알거리던 사람이 남편의 이름을 헷갈리고 날짜의 개념도 모호해지며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걸 볼 때 오는 두려움. 시찬이 유난스럽거나 변덕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보호자로서의 단단함과 물러터져버리는 슬픔이 공존함을 단 시간 내에 보여주고 있었다.

오죽하면 결혼 할 때에 아내를 마뜩잖아하던 어머니에게까지 전화하며 위로를 기대했고, 어디있는지 모를 신에게 기대는 마음은 간곡함만 가득할 뿐이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시찬에게는 억겁의 슬픔이 밀려온 날이었다.

현실을 살다가 이따금 그간의 세월을 톺아보며 지수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당장의 처리해야하는 행정 업무까지도 모조리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하게 살아왔던 무관함에 자책하며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껍데기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자책이라도 해야 지금의 불안함을 덮을 수 있을 듯한 상태. 자신을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의 가장 최측근이자 제1보호자로서의 다면화된 감정의 상태임을 느끼게했다.

아내는 병원에 누워만 있는데, 자신은 잠을 자야했고, 예정된 스케줄에 맞춰 일상을 살아야했으며, 뜨거운 커피로 정신차리려는 행태. 아픈데도 몸이 이상한데도 토한 이불을 치우려 했던 그녀는 왜 도와달라 하지 않았는지를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시찬은 자신을 찔러댄다. 이건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님을 안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봐 미안한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 괜한 수고로움을 하지 않고 평안하길 바라는 관계에서 이뤄진 것들이겠다. 그래서 지수의 행동이 이해되고, 시찬의 자책도 공감을 한다. 두 경우를 모두 겪어낸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이니까.

하루, 이틀, 사흘. 그 뒤의 이야기는 없다. 그간 지수는 병명이 정해졌고, 수술을 했다. 이후의 경과와 호전의 정도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당장 코 앞으로 닥쳐온 집 매매와 대출건에 대한 진행 과정도 기록되어있지 않다. 전전긍긍했다. 시찬과 같은 상황을 겪어본 이가 있는지 SNS에 문의를 했지만 담당자에게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는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 사흘이 한 주가 끝나는 주말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끼여있는 평범한 시간의 일부였다. 누군가에겐 일상을 정리하고 회복 후 다시 시작될 한 주를 기대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임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시찬을 계속 현실로 끌고 와 병동에 머무르게했고, 텅빈 집 그녀의 이불과 헤진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장면에서 일시정지하게했다. 나는 시찬도, 지수의 동생도 아닌데 불안했다.

이래서 오토픽션이 무서운거구나, 이러니 SF소설보다 더 아득하게 만들구나를 느낀다.

나는 남편에게 시찬이 느낄 감정을 워낙 많이 안겨준 사람이라 미리 백기들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모든 감정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살면서 119에 신고할 일도, 구급차를 탈 일도, 새벽 응급실로 급히 차를 몰게 될 일도, 장모에게 보호자로서 병실에 있도록 부탁하며 자신은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30년 넘게 드라마에서 있을거라 여기던 일을 10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남편으로 살면서 다각도로 경험하게 했던 이력은 시찬에게 들켜버린 나의 10년과도 닮아있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건 한번 맛본 경험치라 다음번엔 의연하게 대처할 거라는 기대를 해선 안된다. 삶은 매번 뒷통수를 맞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또 새로운 억겁의 슬픔으로 미리보기한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의 굴곡이기도했다. 삶은 드라마라 했으니까 드라마틱한 극복을 기대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맑은 결말은 없어 더 서글퍼진다.

안 믿던 신을 믿고, 기대 않던 행운을 바라는 것, 그간 그리 살지 않았으니 적어도 한번은 와주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성질도 내어보며 완벽한 이전의 삶으로 되감기는 안 될 지언정 '괜찮아지고있어'라는 말과 희미한 미소라도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라 책 표지를 보며 일렁이는 마음을 눌러본다. 지수 곁을 '서성이다' 결국에는 '마주보다'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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