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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멍때리는 서재
  • 병명은 가족
  • 류희주
  • 15,300원 (10%850)
  • 2021-01-27
  • : 832

*서평단 참여 리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은 때때로 정신질환을 낫게 해주는 둥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신질환을 촉발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 7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 모두가 적이 되어도 가족만큼은 네 편’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 너무 친근하기 때문에 터놓기 힘든 속마음은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든다. ‘사연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처럼, 아무리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이라고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정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있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다년간 맞지 않는 관계에 치이다 지쳐 포기한 사람도 있다.


의사로서 많은 환자를 지켜본 저자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의 이야기를 포함한 10가지의 정신질환 사례를 다룬다. 정신질환의 개념과 원인, 현실적인 한국 병원의 처방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오해와 궁금증을 동시에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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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환자 본인에게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낯선 세상에서 사는 두려운 경험이고, 보호자에게는 언제 자신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면서도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주는 질환이다." 308


고름은 쌓이면 언젠간 터지게 되어있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심각하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개인은 서서히 망가져간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대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가족문제에 얽힌 정신질환에 있어서 ‘완벽한 가해자’나 ‘완벽한 피해자’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기에 발병의 모든 원인을 특정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힘들다.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어 자식들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 모친에게 시달리다 조현병에 걸린 동생 철수를 구출하기 위해 어머니처럼 철수를 통제하기 시작하는 형 영수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남은 것은 어그러진 관계와 환자뿐이다.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난 환자를 받아줄 사회 또한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노골적으로 타인을 차별하는 시선은 줄었지만, 그만큼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나타나는 혐오는 여전하다.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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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몸이 부모의 통제 아래 있다고 느끼며, 거식을 하는 것은 개성 있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 98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나의 몸을 품평하는 아버지의 말과 가끔씩 듣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나의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하루에 한 끼 먹고 두 시간동안 운동하는 생활을 지속하여 10 킬로그램을 감량하고 나서도 나는 먹는 양을 더욱 줄였다. 반 끼도 안 되는 양으로 하루를 버티는 생활을 계속했다. 커피만 마셔도 배가 불렀다. 빈혈이 심해 아침에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경각심이 생겨 밥을 챙겨먹어도 양치를 하며 게워내는 습관이 생겼다. 샤워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나서야 이 악순환을 끊을 결심을 했다. 식습관은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나의 소식을 듣고 나서야 부모님의 잔소리는 멈추었다.


다행히 만성화되지 않은 나의 짧은 식이장애는 전적으로 나의, 혹은 부모의 책임이었을까. 소셜미디어의 ‘프로아나’유행. 유행어 ‘먹토’. 일부 특이한 사람들의 기행이라 치부하기에 우리 사회는 집단 다이어트 강박을 종용하는 것처럼 살에 민감하다. 그뿐 아니라 무시와 평가가 난무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폭력에 익숙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부터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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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치매 판정을 받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자식들의 환한 얼굴. 치매가 바꾸는 것이 환자의 인격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167


‘가족’이라는 단어에는 그만큼 특별한 유대관계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병명은 가족》이라는 제목은 그만큼 파격적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주 말해지는 엄하고 과묵한 아버지와 자식만 바라보는 어머니의 조합은 어떻게 봐도 건강한 환경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식이 부모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족의 이름은 허울뿐일지도 모른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보일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약물을 훔치는 딸의 이야기, 유산을 받기 위해 부모의 치매 판정을 종용하는 아들의 이야기. ‘어떻게 가족이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 참 씁쓸하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경각심과 공감이 함께 밀려오는 책이다.


《병명은 가족》 류희주 지음, 생각정원



부모가 치매 판정을 받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자식들의 환한 얼굴. 치매가 바꾸는 것이 환자의 인격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P167
특히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몸이 부모의 통제 아래 있다고 느끼며, 거식을 하는 것은 개성 있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P98
조현병은 환자 본인에게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낯선 세상에서 사는 두려운 경험이고, 보호자에게는 언제 자신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면서도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주는 질환이다.- P308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은 때때로 정신질환을 낫게 해주는 둥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신질환을 촉발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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