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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멍때리는 서재
  •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 윤석정
  • 9,000원 (10%500)
  • 2021-01-31
  • : 245

*도서제공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의 음악」

 

두통

머리가 아프다 날마다 잠이 부족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머리가 깨지면 죽을 수 있다 추워서 더워서 죽겠다 좋아서 미워서 배불러서 배고파서 우리는 죽겠다 도돌이표 그렇게 죽으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우리는 죽는다 죽을 것 같다 도돌이표 살아야 한다는 변주곡을 듣는다 풍진 세상의 아픈 도돌이표

 

-

 

곱씹고 이해하고 공감의 곁을 내어주며 스스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그렇게 존재해가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 것 같은 시가 모인 시집이다.

 

생활 속 사소한 에피소드에 대한 고찰. 과거의 인연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그 이별 속에서 휘몰아치고 이내 소화되는 감정들. 외로운 사람들의 안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

 

진솔한 표현으로 쓰인 시를 하나하나 읽으며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작업이 끝나자 시집도 끝났다.

 

아래는 제일 공감이 갔던 시이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지우지는 못하는 쌓여만 가는 연락처들. 정리를 하려고 해도 가물거려 손대지 않은지 벌써 몇 년이 지나버린 막연함.

 

-

 

「미지의 나날」

 

나이를 들어도

비슷비슷한 나날들의 미묘한 차이를 몰라

나는 차이에서 막막하고 나날에서 막연하다

나날들의 이름에 얼굴이 있을 텐데

내가 알 수 없는 얼굴들은 어둡다

 

휴대 전화의 이름을 들여다보다가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도

동명이인의 얼굴들이 마구 겹쳐도

혹여 그가 최초의 내 얼굴을 이미 삭제했더라도

나는 알 수 없는 얼굴들의 이름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이름은 미지이므로

때때로 해묵은 일기장 속의 얼굴들이

영영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저편처럼

점점이 어두워지고

내가 관통했던 시공의 얼굴들은 검정으로 변했으므로

 

하여 내게 미지의 나날은 검정

미지의 이름은 최초의 어둠

영혼은 투명

나의 얼굴에 영혼이 담겨

나의 이름도 투명이어야 될 텐데

나이가 들수록

최초의 얼굴들은 밥 먹듯 나날을 바꾸더니

막막하고 막연한 생이 된다

 

-

 

혼자가 익숙한 사람, 혼자가 익숙해져야 하는 사람. 안부를 물어봐주길 바라며 남의 안부를 묻는 수고를 하느라 진이 빠지는 기분과 오롯이 혼자서 견디는 것에 지쳐 누구에게도 손을 뻗지 못하는 기분까지 자극되었다. 젊을 때부터 점점 늙어가며 쌓인 현실에서 살아남은 감상을 오롯이 담은 시.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윤석정 지음,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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