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O)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29
이 책은 편도체의 발달이 더딘 한 아이가 소중한 인연을 만들며 감정을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한 아이의 죽음을 목도하는, 청소년 소설이라기에는 과격한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독특한 설정과 흡입력 있는 문장이어서 단숨에 읽었다. 폭력과 차별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도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상식을 죽이고 남과 맞추어 행동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참으로 이질적이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학교폭력, 살인, 상해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예민한 독자는 주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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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라며? 아무것도 못 느낀다며, 너?" 133
태어날 때부터 무딘 감성을 지닌 주인공에게 타인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니 자신도 필요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 없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죽음 이후로 혼자가 된 주인공에게 감정을 배우는 계기를 만들어 준 캐릭터는 셋이다. 혼자가 된 주인공의 생계를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이웃 ‘심 박사’, 주인공을 괴롭히면서도 주인공의 편견 없는 시선에 호기심을 가지는 ‘곤이’, 첫사랑 ‘도라’.
그 중에서도 곤이와의 만남은 주인공이 처음으로 감정을 경험하는, ‘호기심’과 ‘죄책감’을 자각하는 계기를 주었다. 불량학생인 곤이는 거칠고 삐뚤어졌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아이이다. 그는 주인공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편견 때문에 소외당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주인공에게 먼저 다가간다. 주인공과 곤이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마음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커지고, 주인공은 곤이의 극단적인 선택(가출)을 막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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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
청소년 성장물에서 흔하게 보이는 전개이지만,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주인공의 눈으로 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어른들의 시선과 행동, 그리고 사회를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주인공에게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주인공이 보기에 이상한 것은 자신을 제외한 주변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고립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며, 공감과 교감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양날의 칼처럼, 집단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면 종종 폭력에 눈을 감거나 폭력에 동참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장면이라, 많은 사람들은 ‘남’의 일이 되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공감을 이용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것을 ‘가짜 공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절대로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답지 않다며 주변에서 차별과 괴롭힘을 받은 주인공의 선언은 독자들에게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는 커다란 메시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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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252
무표정한 학생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의 표지, 표지와는 동떨어진 듯한 제목은 소설의 내용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완독 후에는 이 표지와 제목이야말로 소설에 매우 적절했다고 느낄 것이다. 머릿속의 작은 아몬드의 오류로 인해 주인공은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경험과 만남을 통해 주인공은 마지막에 스스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에 이른다. 혼자가 된 주인공이 길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 이웃 심 박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주인공의 가족을 제외하고, 심 박사는 작중에서 주인공을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한 유일한 어른이다. 심 박사는 주인공의 고민과 생각들을 진지하게 들었으며, 주인공과 함께 고민했고, 주인공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주인공을 대하는 심 박사의 태도를 통해 자신보다 어린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도한 간섭 대신 주인공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안전하고 편안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한 심 박사의 태도는 곤이를 대하는 윤 교수의 태도와 대비된다. 진심을 다해, 하지만 적당히 담백하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일 것이다.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 P29
"로봇이라며? 아무것도 못 느낀다며, 너?"
- P133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P245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