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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버렸다, 나는, 아직 그녀가 죽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221 (스포일러O)
질풍노도의 시기는 매력적이다. 짧기에 강렬한 그 시절의 추억은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생에게 친구란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는 소울메이트, 서로의 고난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운명공동체이다. 어른이 되면 웃어넘길 수도 있는 좁은 인간관계를 겪으며 이리저리 휘둘리고 전력으로 고민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1년이 끝나면 다른 반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졸업 후에 더 이상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불안. 타임리밋이 있기 때문에 학창시절의 관계는 긴밀하다. 불안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 실패와 극복은 어른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청소년에게는 공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킨다.
질병은 커다란 시련이다. 특히 학원물에서 부여되는 ‘질병 속성’은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더욱 덧없고 애절하게 만든다. 가까운 누군가를 병으로 떠나보내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크지만, 미숙한 청소년이기에,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는 친구이기에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병에 걸린 캐릭터, 속칭 ‘병약캐’는 성장소설, 라이트노벨에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4월은 너의 거짓말》, 《엔젤 비트!》 등이 있지만, 이 소설은 판타지적인 연출이나 운명적으로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없음에도 절절한 아픔과 감동을 전달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어 실사영화로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도 제작되었다. 실사영화는 후반 전개가 원작과는 상이하지만 성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한다. 원작의 분위기, 일본 특유의 청춘 ‘여름이었다’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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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나와 너의 관계는 이런 흔해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관계니까." 290
둘의 관계는 ‘췌장이 나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비밀이 적힌 일기 ‘공병문고’를 주인공이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둘은 정반대의 성격 탓에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도와달라’는 발랄한 사쿠라의 제안을 주인공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벽을 쌓아온 주인공은 태어나서 처음 맺는 깊은 관계에 당황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그녀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교류지만 둘의 관계는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진전된다. 주인공은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는 ‘사쿠라’의 존재감과 일상 사이사이에 보이는 ‘사쿠라의 현실’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사쿠라를 밀어내지 않는다. 둘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죽음’과 ‘삶’, ‘관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긴밀해진다. 둘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은 연애감정이나 우정과는 다른, 짙은 무언가다. 죽음과 희망 사이, 진심과 도피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 어느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대해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표현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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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함께 웃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를 꼭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247
다른 사람을 동경하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에게는 없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동경하는 사람과 닮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둘은 서로의 다른 모습을 동경했다. 주인공은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타인을 인정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쿠라의 모습에, 사쿠라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여도 외로워하지 않는,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동경했다. 그리고 넌지시 생각으로만 끝나던 이 마음은 대화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쿠라의 죽음 후, 주인공은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동경하던 사쿠라와 닮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다. 주인공의 변화는 사쿠라의 죽음에 따른 필연적인 운명 때문도, 사쿠라의 유언 때문도 아니다. 살아가며 수없이 마주치는 ‘진실’과 ‘도전’속에서 주인공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 전하지 않은 진심에 후회하더라도 앞으로의 하루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 ‘우리는 모두 선택하여 이 자리에 있는 거야’라는 사쿠라의 말은 후반부에 밝혀지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316
알아버렸다, 나는, 아직 그녀가 죽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P221
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나와 너의 관계는 이런 흔해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관계니까.- P290
그녀와 함께 웃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를 꼭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P247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