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고 멍때리는 서재
  •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 스미노 요루
  • 14,220원 (10%790)
  • 2020-07-01
  • : 2,011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런저런 행동이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 첫문장 (스포일러 O)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다. ‘자신이 규정한 성숙함’에 도취되어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한 경험. 자신이 미숙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쉽게 판단해버린다. 그렇게 오해가 생기고 관계는 어그러진다.

 

위 인용구에 해당하는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의 눈에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으면서 취업용 인맥 쌓기 집단이 되어버린 동아리 ‘모아이’는 우스워보였다. 점점 변해가는 동아리의 모습에 실망하고 탈퇴한 주인공은 ‘모아이’의 이상적인 모습을 되찾기 위해 멤버의 스캔들이나 공정하지 않은 취업지원행위를 찾아내 고발하기로 결의한다. 처음에는 타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주지 않는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이 행동이 자신답지 않다고 주인공은 생각하지만, 자기만족을 위해 인터넷상에서 남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왜 주인공은 자신과는 아무 관련 없어진 동아리를 해치는 행위에 집착한 걸까? 그 이유는 모아이와 얽혀있던, 동경하던 친구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

 

"임시 땜빵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이 상대를 상처 입혀도 괜찮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328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이 사라진 친구에게 실망한 경험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다.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 스스로의 상처만 커보여서 자신을 향한 상대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성장과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생의 과도기에 이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질풍노도의 시기이기에 갈등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성인은 되었지만 아직 미숙한 시기. 몸은 컸고 책임은 늘었지만 스스로는 어리게만 느껴지는 대학생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전작까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써온 지금까지의 작품세계와는 보다 성숙하고, 그만큼 복잡ㆍ심오한 관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인다.

 

대학은 꿈과 도전을 시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을 배우는 곳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이상을 꿈꾸는 동아리를 만든 아키요시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교 1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책임감에 떠밀려 힘들 때마다 아키요시는 자신과 함께 동아리를 만든 주인공에게 의견을 묻지만 소극적인 주인공의 태도에 조금씩 멀어졌다. 아키요시는 자리에 적응하였고, 변했다. 더 이상 반짝이는 눈으로 이상을 말하며 엉뚱하거나 창의적인 기획을 선보이지 않게 되었고 동아리의 지원금을 긁어모으며 현실을 따지게 되었다. 주인공은 변하지 않은 자신과 아키요시 사이의 간극을 느끼며 아키요시가 동아리의 색을 바꾸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슬픔과 외로움을 외면하는 아집, 솔직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약함을 깨닫는 건 주인공의 계획이 성공해 모아이가 해체된 후였다.

 

-

 

"알지 못했다. 나 자신의 약함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348

 

주인공은 아키요시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 아키요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녀의 신뢰를 져버린 건 주인공이었다.

 

페르소나, 제 2의 자아, ‘부캐’.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의미하지만, 내면의 인간은 그대로이다.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일’은 참 어렵다. 수많은 관계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사람은 성숙해진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미숙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지만 ‘흑역사’를 성장의 주춧돌로 삼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주인공은 후회했고, 행동했다.

 

관계라는 것은 영원히 보지 않을 것 같아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애매한 것이다. 엎어진 관계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동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전달한다. 스스로의 시야에 갇히는 순수함을 깨고 나온 세계는 복잡하고 잔혹하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귀와 마음을 여는 걸지도 모른다. 관계와 자아, 성장과 두려움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른을 연기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춘의 상실을 다룬 이야기. 모두의 ‘그 시절 흑역사’를 비추는 성장물이다.

 

"실은 다들 텅 빈 껍데기예요." 309

"괜찮아요, 제대로 못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채워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309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나의 이런저런 행동이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임시 땜빵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이 상대를 상처 입혀도 괜찮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P328
알지 못했다. 나 자신의 약함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P348
실은 다들 텅 빈 껍데기예요.- P309
괜찮아요, 제대로 못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채워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P309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