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작은 단순하다. 주인공 요하네스가 다섯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우연히' 바이올린을 사랑하게 된 것 처럼 운명처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첫사랑은 스승이 없어도 그 행복의 언어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 강렬한 경험이다. 요하네스는 그럼에도 외로웠다. 외로웠기에 우리는 더욱 무언가를 갈망하게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기까지 그렇게 성장과 더불어 모든 종류의 사랑을 시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 같네. 한번 사랑을 맛보면-진짜 사랑 말일세-결코 잊을 수 없지. 인생에서 단 한 번 행복한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네. 나머지는 모두, 사소한 것조차, 커다란 불행이 된다네(p.62)
풋내기 같던 그 시절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한번 '진짜' 사랑을 찾게된다. 그것이 첫사랑의 연장이던, 새로운 집착이던. 요하네스는 오페라에서 그 진정성을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삶은 그의 선택을 지지해주지 않았다.전쟁. 동시대의 모든 이들의 사랑을 잠시 접어둬야하는 암흑의 시기이다. 물론 기회는 늘 존재한다. 총탄과 피와 죽음의 속에서도 원하던 오페라의 고장인 베네치아의, 바이올린장인인 에라스무스의 집에 묵게되었으니. 간절히 바라는 건 사람을 이끈다했는가. 그러나 그는 오페라를 작곡할수록 그것이 산화되는 기이함을 겪는다. 간절히 바라고 만들어내지만 왜 사라져버리는가.
그 꿈이 현실이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너는 해방이 될 거야. 기다리면 돼. 꿈은 언제나 이루어져.(p.71)
완전하고 순결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으로 목마름을 느낄 때가 있다. 예술로 먹고사는 이들은 이런 갈망을 창작으로 승화시킬 테지만 때로는 그 행위 자체가 버거운 이들이 있다. 스스로쌓은 완벽주의의 벽이 높아서겠지만. 사랑도 그렇다. 그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느끼지만 점점 더 과한 사랑을 요구하고 급기야는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 꿈이 현실이 될 때가 과연 생에 존재할 것인가. 혼자만이 해내는 사랑이 아니기에 에라스무스의 조언은 지극히 뜬구름 잡는, 이기적인 사유일지도 모른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내가 당신목소리를 소유하겠어요(p.138)
검은 바이올린은 에라스무스의 집착의 산물이다. 당신을 위한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일 뿐, 에라스무스는 그녀의 완벽한 목소리를 재현해낼 수 없다는 좌절을 겪고 그것에 집착하고 결국엔 뺏아서버렸다. 그의 광기어린 집착이 검은 바이올린이다. 그리고 암흑과 같은 그 블랙홀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요하네스는 에라스무스의 죽음이후로 그의 해방을 기도하며 그 바이올린을 부숴버린다.그러나 그 자신은 해방되지 못했다.상상 속 카를라페렌치의 목소리를 잊지못했고 떨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에 오페라를 불태우기 전까진.
사랑에 대한 열정이 몰입과 중독으로 그리고 광기로 변질될 때 우리는 고통을 겪는다. 해방되는 방법을 알면서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다. 에라스무스가 그랬고, 요하네스가 그랬던 것처럼. 적절한 선을 지키며 인생을 살아내는 것. 그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를 지켜내야 인생도 행복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이야기와 결별했다"(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