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는 뜻이다. 소설은 여성이자 반란군의 일원인 자하라, 그리고 남성이자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의 최후 생존자이자 인질이된 자스, 두명의 화자를 1인친 주인공시점으로 번갈아 사용하며 몰입감 좋은 구성을 취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완성함으로써 결국 서로가 서로를 구원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살렸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했기에 비극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결말이지만 그 작은 성과가 자하라의 혼신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고, 자스가 앞으로 해나갈 일에 대한 단단한 결심이 있기에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자하라가 '에어리언'의 리플리처럼 불사신전사였으면 하고 바래보긴 하지만!
그는 유감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동정은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가 홈스테드호에 죽어 마땅하지 않은 생명도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그들이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p.365)
흑과 백,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만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세상이다. 자하라의 아버지인 라고박사는 자하라의 믿음처럼 하우스오브위즈덤호에 바리어스를 퍼뜨렸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에 당한 걸 수 도 있다. 하지만 그의 오만함이 결과적으론 많은 피해를 낳은 것은 아닐지. 반대로 하우스오브위즈덤호의 생존자였지만 자스가 우주선의 내막에 대해 함구했던 비겁함은 12살에 불과했던 어린아이의 두려움과 무지에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지. 각자의 사정은 자신만의 명분이 있다. 자하라가 바이러스 유출 사고 이후 10여년간 방치된 하우스오브위즈덤호를 탈취하려 자스일행을 인질로 삼은 것 역시 사막에서 보금자리 없이 힘들게 살아가던 300여명의 주민들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명분이 있었다. 명분이란 최후까지 지킬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기에 바른 의지와 신념을 가진다면 구원에 다다를 수 있는게 아닐까.
우주가 더 크고 두렵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바로잡히지 않는 실수와 알려야할 진실이 남아있었다.(p.421)
사막으로쫓겨난 반란세력들과 SPEC, 의회로 대변되는 주류계층은 '외계생물'이라는 공통의 적을 완전히 물리친게 아니다. UC33-X호 같은 구조선에 남아 불시에, 불청객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 진실은 끝까지 피할 수 없고 속여지지도 않는 것, 그것이 자스가 깨달은 미래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을 것. 그의 진정한 구원의 날을 위한 준비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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