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식빵 굽는 시간
봄여름가을겨울 2023/05/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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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빵 굽는 시간
- 조경란
- 8,100원 (10%↓
450) - 1996-08-20
: 395
남겨진 이의 고독함
처음으로 읽었던 조경란 작가의 작품이다. 한 때 파티시에를 꿈꿨었는데 제목에서 식빵 굽는 냄새가 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선택했었다. 비록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지만.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서술조차 애매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많아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인물들의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주인공은 베이커리 개업을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말이 없는 아버지와 어딘가 묘한 매력이 있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했으나 딸의 병문안을 번번이 거절했다. 어머니 곁에는 항상 이모가 있었고 이모가 간병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에는 하숙생이 있었다. 여자는 하숙생 남자가 외출한 날이면 그의 방에 몰래 들어가 자거나 그 안에서 공상을 하곤 했다. 평소와 다름없던 날, 그녀가 예상치 못하게 빨리 돌아온 그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그녀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남자는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린다. 그녀의 공허함을 공유할 수 있는 이는 남자의 여동생 뿐이나, 그 여자 또한 계속되는 남자의 부재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보다 더욱.
가족들과의 추억이 어린 빵을 구우면서 그녀는 어떻게든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떠난다.
어머니가 병원생활 끝에 죽게되고 아버지는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공사장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이모는 집을 떠나기 전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그녀가 이모로 알고 있는 자신이 바로 친모이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녀가 태어났다는 것. 언니는 자신과 남편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피하고 싶지만 죄책감이 강한 원심력으로 그들을 붙잡았고 서로의 고통을 지켜봐야만 하는 속죄의 시간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저 제자리를 빙빙 돌며 서로를 외면하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상기시키는 그녀마저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낯선 눈빛으로 쳐다봤다던 그녀의 어머니. 어쩌면 자신보다도 다른 누군가를 더욱 닮았을 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각인됐을 아이.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참아냈던 걸까 아니면 받아들인 걸까.
주인공은 진실을 다 알고 난 뒤에도 친모를 계속 이모라고 부른다. 이모가 짐을 챙겨 집을 떠났을 때도. 그녀에게 진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녀 안에서는 이미 퇴적돼 있는 삶의 흔적들이 있었고 그건 변할 수 없는 고유함으로 그녀의 세계를 만들었으므로. 그래서 그녀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는 그 자체가 그녀에게 가해진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졌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이모든 그들은 모두 그녀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들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거부했고 계속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그녀의 고독함은 사라질 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모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이들의 선택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그녀의 중심에 부디 고독함보다는 다른 무엇이 생기길. 그녀가 필요한 이들의 온정이 마음 속에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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