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봄여름가을겨을
  • 무기여 잘 있어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 10,800원 (10%600)
  • 2012-01-02
  • : 3,644
비극적인 삶을 견뎌야하는 고통의 의미란

헤밍웨이의 작품을 처음 읽어봤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이 공감가면서도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원래는 전쟁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책소개에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고 써져있어 호기심이 일어 읽었다.

시대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주인공은 헨리라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앰뷸런스 부대를 책임지는 중위로서 앰뷸런스 차량을 관리하고 전쟁지에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캐서린 바클리라는 스코틀랜드 간호사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저 이성적인 욕구를 채울 목적으로만 그녀를 가볍게 대한다. 캐서린은 내가 생각해도 정신이 약간 이상한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반에는 사랑을 갈구했다.

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관계가 점점 진심이 돼가며 헨리는 캐서린을 사랑하게 된다. 포격으로 인해 다친 자신이 있는 병원으로 캐서린이 오게 되면서 그녀에게 진심으로 반한다. 그녀의 헌신적인 돌봄과 깊은 애정으로 헨리는 다친 무릎을 무사히 수술하고 복귀한다. 그리고 캐서린은 임신한다.

헨리는 부대 복귀 후 악화된 전선에 맞춰 후퇴하기 위해 운전병과 앰뷸런스를 이끌고 길을 떠나지만 도중에 일이 잘못된다. 죽을 위기를 여러번 겪지만 다행히 캐서린과 재회한다.

캐서린과 재회 후 탈영병 신분으로 이탈리아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헨리와 캐서린은 스위스로 가기로 한다. 조력자의 도움으로 새벽에 보트를 타고 이동하여 마침내 스위스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그들은 행복한 겨울을 보낸다. 서로 떨어지지 않고 스위스의 아름다운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서로만을 바라보며 조용하지만 평화롭게 지낸다.

하지만 그 행복은 캐서린의 출산이 잘못되며 무참히 깨진다. 아이도 죽고 캐서린도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캐서린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바로 앞의 장면들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그 잔상이 계속 남아있었다.

헨리가 캐서린의 죽음을 확인한 후 호텔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의 감정과 앞으로의 삶을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하게 됐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적인 사랑이 주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의 삶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공감돼서 그 부분이 더 기억에 남았다.

개미를 나뭇가지에 올려놓고 그 밑에 불을 피웠을 때 개미들은 살기 위해 여기저기 도망치지만 결국 어느쪽으로도 불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떨어지거나 불에 타서 죽어버린다. 그 나뭇가지를 땅으로 내려놓아서 개미를 살릴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수의 개미가 죽던지 인간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인간을 향한 신의 태도가 바로 이럴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매우 공감이 갔다. 인간이 개미에게 그러는 것처럼 신도 인간을 그렇게 다룬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운명에 절대 개입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일어나야 될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신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렇지만 나는 신의 그러한 냉소적인 시각과 더불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든 운명에 의해서든 자연의 질서를 통해서든, 인간이 겪는 모든 희노애락을 신도 분명히 느끼고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있을 것 같다. 힘들 때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의지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 신을 원망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믿는다.

그게 헨리가 개미를 바라보는 시각과 나의 관점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헨리는 나뭇가지 위에 개미를 일부러 올려놓고 개미들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관찰했지만 냉소적인 마음에서였다. 인간이 고통받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깔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믿는 신이라면 나뭇가지 위에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 고통받는 개미를 슬프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신을 믿는 헨리도 이해한다. 아마 내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제대로 겪게 된다면 나도 헨리처럼 신의 역할에 의문을 갖고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이 생각하고 만든 모든 관념과 이상과 가치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허상만을 쫓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인간이 개미랑 무엇이 다른지, 신의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생명일 것이고 자연의 순리대로 피고 지는 작디 작은 점들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왔어서인지 이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작가의 전 생애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이러한 영향으로 자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도중 터키에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관련 뉴스를 보는데 어린아이를 구출하자 주변에 있던 남자가 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신을 원망할 수 있음에도 하나의 생명이 구해짐에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극적인 상황에도 신을 믿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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