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한 생각은 죽음 이외의 것들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이해하게 했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세상 밖으로나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렸을 때, 아버지가 남긴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던가. 왜엄마는 정말이지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할 텐데도 늘 웃고 씩씩한것일까. 나는 안개 속에서 생각했다. 아버지와 오빠를 그리고 엄마와 나를 반장과 담임과 세상 사람들을, 그러느라고 나는 안개가걷힌 줄도 몰랐다. 나는 안개가 말끔히 걷힌 강가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내가 안개 속에 있을 때 세상 밖 소리라고 여기던 소리들의 주인공들 또한 나와 같이 강가에 있던 사람들임을.
나는 얼른 책가방을 등에 메었다. 그리고 강둑을 뛰었다. 안개가 걷히니 모든 것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나는 뛸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그러나, 부끄러움의 정체를 나는 굳이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뛰는 것뿐. 아침햇살이 마악 퍼지기 시작하는 세상 속으로 나는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가만히 읊조렸다. 강가에 앉은 남자의 말을.
나. 는. 죽. 지. 않. 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