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쇼코는 ‘언젠가는‘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도, 스물세 살에도.
쇼코의 고모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지만 외박이 잦은 일을 해서 자주집을 비운다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기를 공주처럼 대접해준다고,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여자아이인 줄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웃는 엄마와 말이 많은 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바깥에서 만났다면 나는 주저 않고 좋은어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쇼코는 할아버지에게 늘 밝은 내용의 편지를 적어 보내는 것 같았다. 달리기 경주에서 일등을 했다. 고모와 맛있는 카레집을 찾아갔다.휴일에 친구들과 보트놀이를 했다. 북해도를 여행했다. 할아버지에게보내는 쇼코의 이야기는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반면 내가 받은 편지에는 어두운 이야기뿐이었다.
쇼코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겉보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며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내가 일본인이었고, 쇼코의 주변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쇼코는 내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쇼코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특별히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한군데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는 막연한 느낌은 있었다. 쇼코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가서 살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으니까. 그래서 쇼코가 아직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쇼코는 마루에 앉아 얼음물을 마시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그러고는 타박타박 걸어서 조금 거리를 둔 채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쇼코에게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쇼코는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널 보러 한국으로 갈 줄 알았는데."
나는 쇼코의 옆얼굴을 보며 말했다.
"내가 먼저 와서 실망했지."
쇼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아주 작게 열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쇼코는 그림을 그릴까봐, 아니, 글을 써볼까 라고 말하면서 예의 그 예의바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렸을 때 쇼코가 지었던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나는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었다. 쇼코를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쇼코는 약했다.
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보다 정신적으로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그 작은 집에서 인형처럼 붙박여 있던 쇼코의 모습이 유령처럼 언뜻언뜻 눈앞을 스쳤다.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테고.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음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나는 이 글에서 여러 번 할아버지답지 않다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그저 그의 일부분일 뿐이었으리라고생각한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져도 나는 그의 삶의 5분의 3을 알지못한다.
할아버지도 결국은 그저 내 방을 잠시 지나쳐가는 손님일 뿐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낯선 길에서 비를 맞아야 했던 노인, 다른 사람들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실패자 중의 실패자로 기억될 그 낯선 노인이 내 눈앞에 앉아서 딴청을 피웠다.
하나뿐인 이단 우산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성격 급한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펴지는 우산이었지만 버튼도 듣지 않았고 수동으로 펴지지도 않았다. 비는 굵은 방울로 떨어져내렸다. 이런 날씨에 우산 하나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골목 끝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우산을 살 만한 돈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괜히 웃었다. 나는 고장난 우산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울음을겨우겨우 참으면서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넸다.
"이딴거 필요 없다. 비가 많이 오는 것두 아닌데. 야, 왜 울고 그래?"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다시 우산을 뺏어서 우산을 펴려고 낑낑댔다.
"우산이 우산이 펴지질 않잖아. 저번만 해도 잘 됐는데, 꼭 필요하면 이래."
"눈물도 쌨다. 이리 줘."
할아버지가 우산을 조금 만지자 꼼짝도 않던 우산대가 활짝 펴졌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나에게 우산을 씌워줬다. 할아버지가쓰고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정류장까지라도 같이 가자고 하니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그냥 이대로 가겠다고말했다. 그 말을 하는 할아버지의 눈이 빨개졌다. 울고 싶으니까 그냥풀어달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놓았다. 할아버지는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아빠는 삼십 년을 집에서만 보냈어."
엄마는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닳아서 내피가 드러난 소파를 만지며말했다.
"믿어지니? 네가 살아온 시간만큼이야."
엄마는 베란다 귀퉁이의 고무나무를 가리켰다.
"저 화분과 다를 바가 없었어. 그게.…… 얼마나 내 마음을 짓눌렀는지 너는 모를 거야."
쇼코는 우리 엄마 집에는 들르지 않았다. 집 근처의 천변에도 쇼코가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던 나의 모교에도 같이 가지 않았다.
"다음에 갈게. 그래야 또 올 이유가 생기지."
나는 쇼코를 김포공항까지 데려다줬다. 출국장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포옹했다. 몸은 약간 떨어져서 팔로 서로의 등을 두르는 식의 포옹이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던 쇼코의 모습을 기억한다. 보딩패스를 내밀고자동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는 쇼코의 얼굴. 그때 쇼코는 그 예의바른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