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가 나올 무렵,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너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사실은 그것이 더 걱정이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너와 너의 행위, 엄마와 엄마의 행위를 분리해야 한다는 거야. 이건 아주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란다. 엄마가 나무라는 것은 ‘너의 게으름‘이지 ‘게으른 너‘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비난에 상처 입는 것은 대개는 이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진정한 충고인지 비난인지는 사실 말을 하는 사람이 이 둘을 잘 구별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왜 우리는 칭찬은 속삭임처럼 듣고, 부정적인 말은 천둥처럼 듣는지?
칭찬의 과도한 축소, 그리고 비판에대한 과도한 민감성은 진정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자아존중감이 상처 입는다. 우리는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복하려고 그들을 추적하기에이른다. 이것이 자아존중감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격려를 감지하는 데 실패하면서 말이다.
- 안소니 드 멜로
물론 엄마는 충분히 불행했음에도 변화하기가 두려웠단다. 왜냐하면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미지이기 때문이지. 설사 여기서 괴로움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면그게 더 나았던 거야. 설사 저 너머에 행복이 있다 해도 우리는 선뜻 나아갈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번 산 것은 아니니? 네 스무 살이 일 년의 스무 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위녕, 아직 젊은 너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삶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나. 그 이유는반복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네 나이 때는 처음해보는 일이 처음 해보지 않은 일보다 많겠지만 엄마 나이가되면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는 일 년에 손을 꼽을 정도이지. 그게 사물이든 감정이든 말이야.
여행을 떠나면 왜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어. 낯선 길이 멀게 느껴지는 것도 말이야. 그렇다면 시간조차 공평치 않은 것. 삶을 길게 산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은 시간의 잔인함에 내맡겨진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엄마는 알게 되었단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온전히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맥팔레인,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