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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유님의 서재

만일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가 어머니에 대해 좀더 말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모든 사라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후광뿐이었고, 그 때문에 그는 거리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흔한 아저씨다운 모습과는 멀어졌다.
나로 말하자면 어머니보다 긴 생을 남겨놓았고, 그 시간을 빚을 갚는 일에 투신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머니의 과거에서 쓸모 있다 여겨지는 것들로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관둘 것이고, 결국에는 어머니를 미워하고 알 수 없는 대상에게 화를 낼 것이고, 이내 모두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런 우리의 미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지금은 살아 있다는 듯 가벼이 숨을 내쉬었다.
대신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내게 책을 읽어주다 깜빡 잠든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내려놓은 책을 들고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지어냈다.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소년이 그려진 책이었는데, 그애가 물고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눈을 뜨더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고 물었다. 나는 물고기가 강을 타고 흘러갔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틀렸다는 걸 알았고 제대로 글자를 읽지 못해 어머니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는 "그랬구나. 물고기가 왜 그랬어?" 하고 물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강을 좋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따라 웃었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며, 흘러가는 건 다 좋은 거라고, 좋은건 다 흘러간다고 말했다.

나는 곤히 잠든 어머니를 깨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그때 웃음을 터뜨린 어머니가 얼마나 환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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