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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유님의 서재

병도, 환자도, 가족과의 상처도, 사람들의 시선도 아니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 아주 처절하게 울었다. 소방관의 사망보험금을 전부 쏟기에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까마득했으므로, 보경은 결국 식당과 집을 마련했고 남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비참하고 서글펐던적은 처음이었다. 소방관의 사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일은 애초에 보경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탓할 수있는 것이 세상에 많았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삿대질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가락이 보경의 가슴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들어 기어코 상처를 덮어둔 가슴을 짓이겼다.
그날 이후로 보경과 은혜 사이에는 갚을 수 없는 부채가 쌓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결국 서로가 떠안고 있어야 했다.

은혜는 그때부터 바라는 것이 없어졌고 보경은 반대하는 일이 사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선이 생겼다. 서로에게 쉽게 상처줄 수 없도록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고, 그 관계에 연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경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어쩌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보경은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없는 채 엄마가 되었으므로 두 아이에게 이해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때는 도망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으니 돌아가는 날이 점점 미뤄졌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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