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누에는 즐겨먹는 술안주 번데기의 전신인 애벌레... 명주실을 뽑아내는 익충 정도였고, 당연한데도 그 누에가 자라서 나방이 되는 줄은 몰랐다. 어느날 돌연 아홉마리 누에를 입양한 숲해설사는 지우개똥 같던 누에에게 뽕잎을 상납하며 나날이 통통해지고 나름의 이목구비(랄까, 그저 주름이랄까, 다소의 마디랄까)가 생기는 누에에게 홀딱 반하게 된다.
"으에 애벌레같은 걸 왜 키워?"라는 주변의 반응에도 작가는 점점 이 꼬물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거두는데 진심이 되어가는데, 시나브로 덕통사고에 빠져드는 과정이 너무너무 웃기다.
책상을 뒤져 넓적한 붓 하나와 OHP 필름을 찾아냈다. 뽕잎 한 장을 찢어 넣어주고 누에들이 먹이에 몰려간 틈을 타 붓으로 조심스레 똥을 쓸어모았다. 적당히 자른 OHP 필름을 쓰레받기 삼아 똥을 걷어내고 바닥에는 키친타월을 깔았다. 둥지가 이보다 더 보송보송할 수가 없었다. 깨끗한 둥지에서 쉬고 있는 누에들을 보니 뿌듯함이 머리끝까지 밀려왔다. 그러나 자부심은 곧바로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누에 똥 청소가 이렇게 기뻐할 일이란 말인가. (47쪽)
생략된 누에 기르기 주의사항은 열개쯤 되었다. 손은 반드시 수돗물로 비누 없이 씻을 것, 잠깐 지켜봤을 뿐인데 한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고 나를 원망하지 말 것, 혹시 누에에게 말을 걸고 싶거나 별명을 붙여주고 싶거들랑 애벌레랑 산다고 나를 놀렸던 일을 사과하길 바람.(64쪽)
책을 읽다 문득 이 지우개똥의 미래가 궁금해 누에나방을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나비며 나방류의 얼굴을 처음 봐서 이기도 하지만, 팥알 같은 눈이며 마스카라를 올린 듯 화려한 더듬이, 토끼털 망토라도 쓴듯 하얀 털에 덮힌 모습이 귀부인 같은 녀석이었다. 고작 50일만에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완성체인 나방으로 매번 이토록 완벽하게 다른 변신을 하는 생물이라니! 누에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은 짧고 찬란했던 여름을 온전히 아홉마리 누에에게 내준 신실한 누에집사의 연서다. 숲해설가인 작가는 주말이면 기꺼이 누에를 먹일 뽕잎을 따느라 심마니가 되어 숲을 누볐고, 이마만 보고도 아홉마리 누에(토마스, 소피, 흰둥이, 막냉이, 회오리 등등)을 구분하는 누에 광인이 된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상대라는 세계를 속속들이 탐색하게 된다. 작가는 사랑하는 누에의 과거를 뒤진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중전이 친잠례(누에치기를 기념해 올리는 제례)를 올리는게 중요한 행사였다.
누에는 우화되기 전 입에서 가늘고 반짝이는 액체를 뿜어내 고치를 만드는데, 이를 뽑아내면 명주실이 되고, 명주를 엮어 짠 것이 지금도 최고급 섬유 중 하나인 비단이다. 실크로드의 기원이 되기도 한 누에의 일생에 동참하며 작가는 기꺼이 잠모(누에치는 사람)의 사명감에 고취된다. 삽화로 등장하는 누에들은 중간중간 '누에적' 관점으로 말을 건다.
우리 조상의 입에서 나온 실로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나왔대. 태양과 비바람에 5년은 족히 말린 오동나무와 누에고치 실이 만나 우륵의 가야금이 탄생한 거라고. 일의 시작이라는 뜻의 ‘실마리’도 우리로부터 나왔지. 옛날엔 고치의 실마리를 잘 찾는 사람만이 누에치기 전문가라고 불릴 수 있었어. 우리는 오랫동안 사람들 가까이에서 친근하면서도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 말이야. (203쪽)
50여일간 꼬물대던 누에의 일생을 함께한 작가는 그 특별한 시간이 준 깨달음을 고백한다. 손톱만 한 동거충들은 이름과 개성을 가진 누에들로 한 생을 살다가 가을이 오기 전 차례로 은사시나무 아래 묻혔다. 아홉 누에 중 가장 늦되던 막냉이가 애벌레 시절 요람이었던 뽕잎 위에서 마지막 숨을 뱉을 때는 저절로 울컥한 심정이 된다.
누에나방들이 정해진 바대로 생의 규칙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점점 어떤 숭고함에 사로잡혀 갔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으로 세상에 나와 소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는 삶의 준엄한 질서를 배웠다. 고명한 학자의 저술이나 냉철한 선각자의 강의에서가 아닌,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누에나방 따위에게 정통으로 저격당한 인생의 준비였다.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