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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님의 서재

디드로는 천재다. 내가 연극이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그 소름돋음의 정체를 18세기에 벌써 이리도 정확히 간파해 내다니....

배우가 자아도취되어 역할에 흠뻑빠져 연기하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감동하기 전에 저 배우 용쓴다, 애쓴다, 질린다,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디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상상력과 통찰력에 기반하여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역할로부터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그 인물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슬픔에 진짜 잠겼을 때는 그에 대한 시를 쓸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 예술 작품이 나오는 순간은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극단적인 감정이 가라않고, 기억이 추억을 만나 (...) 사람들이 자신을 제어할 수 있을 때"인 것이다.

연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연극이나 드라마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보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그것들을 감상함으로써 극적 감동의 극단까지 맛볼 수 있고자 하는 사람들은, 디드로의 이러한 선진적인,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연기론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디드로 사상, 나아가 백과전서나 계몽주의에 대해 말만 들어보았지, 그 감을 제대로 못잡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상가의 예술론을 접함으로써, 계몽사상을 뼈다귀만이 아니라, 살과 피로 체득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번역이 부드럽고 유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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