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러일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 땅인 사할린 남쪽을 일본이 넘겨받게 되었는데 일본은 그 지역을 '가라후토'라 명명했고, 조선 사람은 한자의 음대로 '화태'라고 불렀다. 탄광, 벌목장 등 일본이 빼앗은 땅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먹고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땅을 찾는 조선인들도 있었다. 주인공 단옥의 아버지 만석은 홀로 화태에 가서 탄광 일을 하며 조선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쳤고, 남은 가족들이 다 함께 화태로 이주하기로 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옥은 그렇게 사할린에 처음 발을 들였고 힘겨웠을지언정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
" 1945년 8월 15일은 조국이 해방을 맞은 날이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겐 그로 인해 다시 한번 고향과 가족을 잃게 된 날이었다. "
- 본문 중 412p

책 속에서 단옥의 이야기는 1943년에 시작해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진다. <슬픔의 틈새>는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이주를 겪어 세계 곳곳으로 보내진 한인 1세대들은 대부분 광복 이후에도 남의 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다시 소식이 닿고 귀환의 기회는 드문드문 찾아왔다.
남의 땅에서 삶이 녹록지 않더라도 주인공 주단옥은 자신이 동경했던 제인에어처럼 당당하고 야무진 어른으로 자랐고,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채워나간다. 고통과 슬픔이 없다면 분명한 거짓이지만 그 틈새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내고 더 크게 키워내는 것이 단옥의 특기였다. 그것은 타고난 품성인 것 같기도 하고 삶에서 단련해 만들어낸 기술 같기도 했다. 그래서 단옥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하나씩 이루어내는 모습이 더욱 눈부셨다.
" 단옥과 한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강제 이주로 겪은 고통에 대해 온정이나 동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바랐다. 또한 이곳에서 살아낸 삶에 존중과 위로를 받기를 원했다. "
-본문 중 416p
우리는 필수적으로 근현대사를 배우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 중 먼 땅에 자리 잡은 한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단옥의 삶을 읽어가며 더욱 느꼈다.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과 조치들에 휘둘리기도 하고, 조국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에 늘 귀 기울이고, 강제로 단절되었던 여러 것들과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붙잡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단단하게 서있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단옥의 가족(+가족과 같은 이들)을 포함한 같은 시기, 사할린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다루어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개인의 삶과 역사가 교차하는 세밀한 장면들을 매우 풍부하게 다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들의 분투와 단단한 연대, 고향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소설로 그려진 그들의 삶을 통해 잘 몰랐던, 하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작은 틈새를 들여다본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