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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님의 서재
  • 베풂과 용서
  • 미로슬라브 볼프
  • 14,400원 (10%800)
  • 2008-04-04
  • : 409

해마다 고난주간이 되면 예수님이 담당하셨던 십자가의 고난을 재현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뜻은 가상하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십자가에 대한 왜곡이다. 예수님이 처형당하실 때 두 명의 죄수 역시 십자가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훨씬 더 깊고 풍요로운 뜻이 담겨있다.

 

사순절 동안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날 위해 피 흘리며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죄송스러워하고 눈물짓는 것으로 사순절을 보내는 것 또한 십자가를 호도할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고난당해야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가 중요하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그것을 ‘베풂과 용서’로 명명한다. ‘베풂과 용서’야 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설명하는 말이다. 십자가를 통해 베풂과 용서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하나님을 우리와 ‘흥정하시는 분’ 혹은 ‘산타클로스’와 같이 우리를 한없이 안아주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흥정해야 하는 분도, 산타클로스처럼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을 용서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더라도 용서에 대한 우리의 왜곡 역시 존재한다. 흔히 우리는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볼프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고 죄를 잊어버리셨으며 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그의 설명은 복음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왜 풍성히 누리지 못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회개와 뉘우침은 용서에 대한 반응이고 뉘우침이 없는 것은 용서의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볼프는 용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용서의 참된 의미를 주지시킨다. 예를 들어 용서는 용서하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용서가 자신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해를 끼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때 교정되어야 한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구호도 용서가 잊는 것이고 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 용서의 완성이라는 것에 비추어보면 용서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심어주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베풀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감사하기가 어렵다. 여기에는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땅의 문화가 한 몫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프가 베풂과 용서에 대한 공동체의 역할을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풂과 용서를 왜곡시키고 베풂과 용서가 설 곳이 없도록 만드는 이 땅의 문화에 저항하는 새로운 공동체와 문화 즉 교회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교회의 현실을 보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볼프가 이 책에서 루터를 많이 인용한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루터가 십자가의 은혜를 그 누구보다도 더 깊게 깨달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바로 여기로부터 왔다.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우리는 루터에서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루터의 말이 생소한 것을 보면 루터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그렇게 잘 전수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책을 덮으면서 루터를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 아닐 것 같다.

 

십자가는 베풂과 용서의 결정체다. 교회는 그 어는 곳보다 베풂과 용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묵상하면서 우리가 깨닫고 품어야 할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사순절 묵상용으로 기획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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