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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숲을 거닐다

84세, 한 해만 지나면 죽음을 맞이하는, 하나 당시엔 죽음이 다음해라고 예측할 수 없는 마르쿠스 카토가 두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의 설정이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 보면 로마인 마르쿠스 카토는 (60세 이전에는)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 등 그리스 문명을 배척하는 입장이었다. 그리스의 신화가 물을 건너와 부츠 모양의 반도에 상륙하면서 로마 신화로 버전이 바뀌지만 로마는 아직 문명이라고 자주성을 주장하기는 이른 시기였다. 로마만의 문화적 정체성이 확고해지지 않은 시기, 그래서였을까?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쟁취의 대결에서 한편의 수장을 맡은  마르쿠스 카토는 반대편에 있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를 무참하게 밟았다. 표면에는 그가 너무나 친그리스적이라는 점을 앞세운다.

제2차 포이니전쟁에서 한니발(카르타고)를 제압하고 아프리카를 로마의 지배권에 편입하는 등 '제국' 로마의 기반을 마련한 입지전적인 인물 스키피오(흔히 '대(大) 스키피오'라 부름)의 공적은 어찌 할 수 없고(평민들의 지지기반이 굳건하므로), 마르쿠스 카토는  스키피오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사랑은 경도된 것이며 조국 로마에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스키피오)의 카르타고에 대한 관용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공격의 빌미는 이러하다. 요즘 쓰는 말로 치면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생성해낸 '프레임'이다. 그리스문화에 친화적인 스키피오를 공격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일파는 친로마적인 애국주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목표였다.

결국 스키피오는 휘황찬란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35세 한니발을 제압하던 시점을 정점으로 52세에 자발적인 망명 상태로 머물던 변방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다. 우리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느다면 역대 중국의 왕조에 친화적이던 사대주의들을 비판하는 것이 민족주의 프레임 정도.

그런데, 환갑을 넘긴 마르쿠스 카토는 사람이 변했다. 그리스어를 뒤늦게 배우고, 그들의 문학과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며 이를 자신이 지나온 길을 정리하는 지침으로 삼는다. 이런 면면은 숙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스토아학파가 주장들, '영혼은 불멸하다' 플라톤 등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의 저술로 남아 있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철학의 골자를 로마인 마르쿠스 카토라는 해설자를 통해 듣는 기분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마르쿠스 카토 전'에서 카토는 소크라테스를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관습을 파괴하고 동료 시민들로 하여금 법에 어긋나는 견해를 품게 함으로써 제 나라에서 참주가 되려고 기를 쓰는 요란한 수다쟁이”라는 것. 또한 카토는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학파를 조롱하면서, “그의 제자들은 그와 함께 늙도록 공부만 하니 그에게서 배운 기술은 저승에게 가서 미노스(저승, 사자들의 심판관) 앞에서 변론할 때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고르기아스의 웅변술을 옹호하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쓸모가 없음을 비판하는 칼리큘레스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비판이다.

<노년에 관하여>(<그리스로마에세이>)에서 주 대담자인 카토의 입장은 한창 때의(그는 말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국사에 전념했으니 언제가 한창 때라도 말하기는 힘들다) 생각과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얘기를 듣는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가, 소 스키피오로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대 스키피오) 손자(양손)이기에 립서비스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것일까? 아닌 듯하다. 한나발에서 스키피오까지 외적과 정적을 이미 무너뜨린 상태에서의 여유인가?

어쨌거나 <영웅전>에서의 마르쿠스 카토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삶을 재조명하는데 역점을 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B.H.리델 하트,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에서 우리 역사로 치면 충무공을 모함하고 시기하는 원균과 그를 대항마로 내세우는 일파의 수장쯤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스키피오를 "로마 제국의 창시자"라고 지칭한다. 기왕 이 책 얘기를 꺼냈으니 한 대목을 인용해서 두 사람의 대결 양상을 가늠해보자.

“그러나 남아 있는 기록에서 보면 적대행위는 모두 카토의 편에서 저질러졌다. 카토에게 스키피오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사랑은 그의 카르타고에 대한 관용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그것은 마치 소에게 빨간 천을 들이대는 것과 같았다. <지독한 카르타고>가 입버릇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그의 앞에 서 있는 고결한 영혼과 높은 명성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의 좁은 마음은 카르타고와 스키피오가 모두 망하기 전에는 쉴 수가 없었다.”(위의 책 268)

어쨌거나 노년의 마르쿠스 카토는 그 자신이 그리도 경멸하고 라비벌을 처내는 빌미로 삼았던 문화를, 그리스어를 배우고 그리스 문명의 장점을 자기 인생에, 그리고 로마정신에 접목시키기 위해, 스키피오의 유지를 받들듯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이미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지.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노년에 관하여> 33절)

노년의 "체력 저하는 절도 있는 생활로 늦출 수 있으며", "정신 활동을 늘림으로써 체력에서 잃은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27~38절)"는 것을 역설한다. 카토의 육성이다. 특히,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다는 이 대목은 참으로 명문이고 숙현하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필멸의 존재다 이 점만은 절대진리다. 너도 나도 한번뿐인 인생인데, 젊은 시절에는 왜 그렇게 권력이 다 뭣이라고 아웅다웅 싸우고 사셨어요? 라고 묻고 싶어진다. 이것은 어쩌면 <노년> 대담을 설정하는 키케로 던진 질문이고, 로마의 두 영웅, 두 거장들의 늦은 화해마당을 책이란 공간에 마련한 것은 아닐까? 

통찰력이 돋보이는 노년의 마르쿠스 카토는 빛나는 그리스 문화를 로마문화에 접목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실행이 답이다, 라고 믿고 행동하는 젊은 로마에 정체성을 수립하는데 기여한다. 개인의 삶도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이란 것도 생로병사가 있다. 죽음을 어찌 맞이하게 되는지, <노년>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간단하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등등 플라톤이아 크세노폰 등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남긴 저작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알면 알수록, 마르쿠스 카토가 순연하게 받아들이는 죽음을 이해하게 되리라. 역사를 가장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다루는 것으로 영국BBC방송이 최고하고 한다. 그들처럼은 힘들더라도 <노년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이제까지 소개한 고전들을 함께 읽으면 마르쿠스 카토라는 사람, 왜 그 책이 집필했는지 키케로의 의도를 알게 되리라. 다만 책들마다 집필 동기가 뭔지 저자가 깔아놓은 '프레임'을 고려하면서 읽으면 의외의 소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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