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 서가에서
고종석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법학을, 파리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신문기자로 30년 이상 활동했다고 하며
여러권의 책을 펴내셨다고 한다.
단 한권의 책으로 감히 당대의 문장가라 불리는 사람을 평하는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내 시점에선 적어도 열린사람, 그것도 아주 크게 열린 사람으로 보인다.
이 즈음 나는 좌도, 우도 아닌 그보다 더 큰 지향을 가진 사람들에 끌린다.
어느쪽을 바라봐도 다른쪽에서 돌팔매가 날아오는 세상이지만
어느 이념에도, 어떤 주의에도 매몰되지 않고,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들..
결국 그런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갈수 있다고 생각된다.
특정한 이념, 정치이념에 매이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부채가 되어
그가 지닌 뛰어난 에너지를 평생 부채상환에 탕진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고종석 선생도 기반으로 삼으시는 이념적 지향이 있었지만
그에 매몰되지 않고 더 큰 것을 바라보는 관점,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언어에 대한 책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열린 세상과 그런 세상에 대한 지향을 언어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영어공용화논쟁에 대한 생각에서는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우리 사회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까지를 옭아매고
있는 민족주의의 밧줄의 질김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러면서
우리말에서 일본어 잔재를 솎아 내자는 국어순화운동을 비판한다
우선 역사적, 현실적인 측면에서 살핀다.
우리 국어사전에 있는 어휘 태반은 한자이고 그 한자의 태반은 일본에서 일찍 서양학문을 받아들이고 이를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만들어낸 말들이 대다수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어휘 대다수였다.
이성(理性) 정부(政府) 의지(意志) 법정(法庭) 고전(古典) 예술(藝術) 의학(醫學), 사회(社會), 심지어 民族이란 말까지도...
그렇다면 이 한자어들을 우리말에서 제거했을때 실로 단한문장도 입을 열어 말할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잔재가 아니라 이미 근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선생의 이같은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마땅히 있을것이나 추후에 읽어보기로 한다. )
어쨌거나 일본은 이렇게 만든 어휘들을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과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도 역수출했다고 한다.
여기서 선생은 여러 가지 시대 사정 상 우리 스스로 서양학문을 직접 받아들이고 번역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은 아쉬을 표한다.
그리고 유사한 사례로 일본 학자들이 유럽 개념들을 번역하거나 새로운 개념들에 이름을 줄 때 한자를 사용하듯 유럽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 때 대체로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 기대었다고 한다.
선생은 영어공용화론에 찬성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중세엘리트와 같은 지식독점욕의 발로일것이라는 의견을 표한다.
그 자녀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든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가 지닌 언어로서의 우위와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혜택을 독점하려는 행태라는 것이다.
국가적 관계에 있어서도
이웃나라와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쁜 관계를 맺는 것이라 평한다.
한글 혼용론에 대한 단상으로서는
이미 우리가 쓰고있는, 우리 어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는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우리말이다 그리고 한자어들의 상당수는 한자에 대한 지식없이는 이해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한자의 매개 없이
독약(毒藥)이나 해독(解毒)의 독(毒)과, 독촉(督促)이나 감독(監督)의 독(督), 독서(讀書)나 애독(愛讀)의 독(讀)과, 독지가(篤志家) 또는 위독(危篤)의 독(篤)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고,
일리있는 말씀으로 보인다.
글을 맺으며,
최근의 사태로
한 개인이나, 한 정당이나, 그들이 추종하는 이념지향의 몰락이나 혹은 부상 따위 보다는,
그저
우리사회가
분열과 퇴보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열린사회로 가는 지향을 버리거나 혹은 그 길목에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방황으로 날려버려야 할지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